Rooney Kim

Rooney Kim님의 아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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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코드를 받아들인 다는 것의 의미

*노코드 B2B SaaS 마케터의 회고, 다짐 그리고 여정 1


뭐가 제일 중요할까? 뭐가 제일 가치 있을까?

삶은 습관의 총합이니까

회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데 엉켜 일을 해내는 곳이다. 여기서 효율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대표에게는 ‘매출, 절약, 성장, 투자 성공, 확장’이겠고, 직원에게는 ‘성과 증대, 연봉 상승, 삶과 업무의 비율’ 정도가 될 수 있다. 즉,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 목표, 업무 방식, 우선순위, 감정, 컨디션 등등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서로가 균형을 맞추며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곳이 회사다.

이 사람들에게는 경험, 경력, 시간을 통해 익혀온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업무를 해낸 습관이 있다. 여기서 습관이라는 건 요컨대,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내가 쓰는 ‘브라우저와 모니터의 크기, 대수’ 그리고 주로 이용하는 ‘업무용 생산 관리 툴들’, 더 나아가 개발자들이라면 자신이 익숙한 ‘개발 언어, DB, 아키텍처 등’이다.

직장인들에게 그리고 개발자들에게 이 습관은 '안정과 평화 그리고 번영'을 상징한다. 수년 또는 십수 년 이상 내가 싸워 쟁취하고 나를 먹여 살린 건 팔 할이 자신의 습관들이었고, 앞으로 수십 년간 나를 발전시키고 나의 삶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역시 ‘사회 속 나의 습관’들이다.

이들에게 이 습관들은 영원할 것 같다. 아니, 영원해야 한다. 이 습관들 덕분에 지금 나의 사회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고, 연봉을 받을 수 있으며, 앞으로의 승진도 가능하다. 이를 내 삶으로 환원해 다시 말해보자면, 이 습관들 덕분에 내가 집을 구했고, 결혼도 했으며, 자녀들도 낳아 큰 문제없이 양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이 습관은 나의 생존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의 안녕과 평화와도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습관은 매우 예민하고 결정적이기에 타의에 의해 침해받거나 무시당하거나 위협을 받는다면 그들 역시 가차 없이 반격하거나 전복시킬 수 있다.

이렇게나 중요한 그들의 습관에 서서히 변화의 밀물이 젖어들고 있다.

노코드, 공포와 귀찮음 사이

사실, 불편할 것이다. 그저 노코드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미 개발자들에게 ‘내 삶의 경력, 내 기술의 정수’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처음에는 마치 생존권에 위협을 가하는 요상하지만 스킬 뎁스는 낮은 형편없는 괴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고 노코드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해진 지금, 그들의 생존에 큰 위협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할 이유는 물론, 십수 년간 쌓아온 나의 이력과 기술을 굳이 반납하고 ‘새롭지만 어색한 코딩이 필요 없는 기술’을 익힌다는 건 영 불편하고 귀찮을 것이다.

그렇게 노코드와 친해지지 않고 자신의 습관을 유지하던 사이에 ChatGPT가 인류의 세상살이 패러다임에 큰 충격파를 던지면 탄생했다. AI는 이미 30년도 전부터 익숙한 단어였지만 자신의 일과 삶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치며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공포와 환호’를 동시에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AI기술은 개발자는 물론, 비개발자들까지 흥분시켰고 덕분에 노코드라는 키워드를 마이너에서 끄집어 올려 하드캐리했는데, 덕분에 ‘개발 세상’에 유입된 햇병아리 비개발자들의 가슴은 더 큰 꿈으로 부풀었다.

AI까지 상용화되고 나니 비개발자들은 노코드로 프론트엔드와 백엔드까지 개발해 버릴 기세다. 그리고 실제 사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적어도 두 달은 공부해야 하는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를, 적어도 네 달은 학습하고 실습해야 하는 백엔드 언어를, 그냥 한 시간짜리 노코드 강의를 듣고, 짧게는 하루, 비개발자도 2~3일 만에 백엔드라는 걸 만드는 걸 보고 있자면 아마도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찰 수 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걸로 뭘 얼마나 할 수 있는데? 유지보수는? 확장성은? 대규모 연동은 할 줄 알아?’라고 생각했다면 차라리 낫다. 그건 노코드로도 이미 다하고 있는 중이니까.

사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아군이자 적군은 ‘나의 습관’이라는 것.

습관이 제일 큰 허들

‘타성에 젖어 발전이 없는 거 아냐?’라는 질문에도 코웃음 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비난보다는 내 삶의 안정과 평화가 더 중요하니까. 오래되어 묵은 나의 습관은 ‘변화’의 물살을 그저 흘려 넘길 작은 트렌드 줄기 중 하나로 간주하고, 나의 습관은 나를 평생 먹여 살릴 것이라는 편향된 믿음이 되어, 이 습관을 유지하고 지켜야만 한다는 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집중 방어에 나선다.

처음에는 변화가 무섭다. 하지만 공포도 익숙해지고 알고 나면 이젠 귀찮아진다. 맞다. ‘귀찮음’과 ‘굳이?’라는 내 삶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마음이 제일 큰 허들이다. 알고 보면 사람들의 업무 시간을 줄여주고, 성과를 더 높여주고, 남는 시간에 개인의 삶을 누리거나 개발 자체에 더 시간을 쏟을 수 도 있지만, ‘굳이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을 다 포기하고 그걸 해야 해?’라는 마지막 난관 앞에서 항상 모든 선의와 제안을 뿌리친다.

이런 면에서 노코드는 좀 억울하다. 왜냐하면 노코드는 모든 걸 포기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들이 살아가던 방식, 일하던 스킬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며 활용하면서 노코드까지 곁들여 ‘성과도 높이고, 시간도 아끼고, 비용까지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아직까지 눈길도 주지 않는 그들의 냉가슴에 노코드는 오늘도 속이 상한다.

노코드, 개발자/비개발자 모두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된 반려 기술

오히려 이런 면에서 개발은 하나도 모르는 비개발자나, 이제 막 개발을 배우는 중인 초급 개발자들은 노코드가 반갑고 편하다. 그들은 잃은 것도 없고, 오히려 노코드 덕분에 ‘서비스’라는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따라서 어쩌면 노코드는 ‘기성의 거인들’에게 외면받는 동안, ‘초심의 어린아이’들에게 더 강력한 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 꼭 알리고 싶은 게 있다면, 노코드는 개발자와 비개발자를 갈라놓는 훼방꾼도 아니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난봉꾼도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코드는 당신의 옆에서 방긋 웃고 있다. 십수 년 전, 꼬꼬마 개발자 시절, 호기롭게 선택했던 고난도 레벨의 언어들처럼 까다롭게 굴거나, 고통을 주거나, 놀리거나, 당신을 울리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의 곁에서 두 눈을 깜빡이며 뭐 도와줄 게 없는지, 얼른 일을 끝내고 당신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주고 싶어 발을 동동거리며 안달 나 있을 뿐이다.

이렇든 저렇든 노코드는 계속 발전할 것이다. 아, 개발 언어 또한 계속 발전할 것이다. 노코드의 등장이 개발의 쇠퇴를 의미한 적도 없고, ‘노코드’ 역시, 개발 언어에서 탄생한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자녀가 부모(기존) 언어들에게 도움을 주고 언어를 덜 사용해도 거대 기업의 백엔드 업무까지 해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은행, 금융, 빅테크 기업까지 선택했다면 뭐가 있어도 있지 않을까?
비개발자들도 서비스를 척척 만들어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참에 노코드 하나 들여놓고 같이 산책하고 운동하다보면 어느새 나의 평생 반려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잠깐이라도 들었다면, 당신은 이제 당신의 삶에 가장 큰 허들이었던 ‘귀찮음’을 넘어갈 준비가 되었다.

‘아, 그냥 한 번 테스트로 써보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면, 당신은 이제 그 허들을 넘어, 삶과 업무의 확장성을 업그레이드할 준비가 되었다.

싱크트리

백엔드 노코드 개발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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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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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학창 시절엔 백일장이니 문학제 등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고, 상을 받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내 생각, 삶에 대한 정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 불합리한 요소들, 정의롭지 못한 사람과 사건들을 보며 막연히 수필, 칼럼, 소설 등을 써대며 생활에서 체득한 감정과 깨달음을 끄적끄적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만의 문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하지만 그때는 간과했다. 좋은 글도 모방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저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제 아무리 베스트셀러에 잘 나가는 작품이라도 막상 읽어보면 생각 외로 큰 감흥이 없는 글이 있는가 하면, 웹서핑을 하다 문득 맞닥뜨린, 이름조차도 생소한 한 커뮤니티의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조회수가 100이 되지도 않는 어떤 글은 이미 감히 범접조차 못할 경지에 이르러 나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며 수준 낮은 나의 자만을 유린하듯 저릿한 반항심과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글도 있었다.


변명 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많이 읽지 않는 이유는 혹시, 내가 그들의 글에 압도되어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도 못한 나만의 색깔이나 향을 잃지는 않을까, 너무나도 매력적인 문장과 세련된 문단의 끝맺음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흉내 내거나 따라 하지는 않을까 하는 바보같이 부질없는 생각에서다. 정말 매력적인 글과 어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 하지 않나.


카리스마 넘치는 글의 힘은 대단하다. 이 위력은 대부분 작가의 필력, 호소력에 기인하지만, 엄청난 양의 독서량, 공부, 사전 조사가 필력보다 먼저 작가 안에 쌓인 결과다. 게다가 이미 수백만의 사람들이 읽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의 경우, 이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도 한 무명작가의 소심함에 더 소심한 한 스푼을 더 얹는데 한 몫한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명, 대륙, 왕족, 가문에서 공통적으로 저질러온 실수가 있다. 그 실수는 자신의 것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어리석은 믿음과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선사시대부터, 문명시대, 봉건시대, 산업시대, 이념 시대, 그리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과 이유로 인류는 자신의 선을 이루기 위해 무수한 충성과 죽음을 강요하며 달려왔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모두 어리석은 판단에 기인했다.


‘내(우리)것을 지키고, 보전하여 후대에 전달해 내(우리)것의 영원한 번성을 위해!’


하지만 모든 권력은 어리석게도 주변부만 훑고 얼른 태운 뒤 시속 300km를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본 정면의 풍경과 같다. 좁아진 시야를 기반으로 하는 판단은 외부의 신선하고 훌륭한 의견은 무시해버리는 저주에 걸리 듯, 거의 모든 권력가들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해왔다. 외부의 고견과 시선은 그저 자신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작된 바이러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대의 권력뿐만이 아니라 역사를 통한 모든 왕가의 가문들을 보면 그 어리석은 본능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문의 정통성을 위해 집안사람끼리 결혼을 하고 대를 이어가다 생긴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전병과 그 외 수많은 종류의 유전병이 그 위험성을 보여주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혈통과 순혈주의는 결국 섞이지 않으면 도태와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에 연료를 더 태우는 것과 같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은 믿음과 자신의 것을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배우지 않고, 구하지 않으며, 더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항상 어리석은 결과로 이어졌다.


좋은 작가의 훌륭한 글을 읽는 것은 생각의 다양성, 아이디어와 지식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문장력을 얻기 위해 중요하다. 너무나 매력적이고 강력한 마력을 가진 글 때문에 내 색과 문체가 바뀌었다고 느낀다면 이는 ‘자신만의 색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색을 잃고 계속해서 모방하는 글을 쓰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는 오히려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양성은 또 다른 하나의 자극을 의미하지 않고, 나와 다른 수 천, 수 만 가지의 색다른 자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성한 잡초 사이에서 오롯이 피어나는 자신만의 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그 꽃 역시 결코 다른 잡초보다 더 나은 꽃은 아니다. 그 꽃을 피운 줄기는 잡초였고, 다른 잡초들도 아름답다.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 그 잡초는 ‘내가 이름 붙인 나만의 꽃’이라는 점. 그렇게 자신 만의 색은 탄생한다.


피와 아이디어와 체험은 섞일수록, 다양할수록 합리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합리적이라는 의미는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이 장황한 설명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새로운 것은 ‘체험, 적용 또는 거부, 응용,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것’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 없이 탄생한 것은 지루하고 고루하며 독선적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세상을 탓하고 원망하는 무명의 뒷배경은, 아주 자그마한 것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극을 바이러스로 인식해 끊임없이 외출을 자제하고 골방에 갇혀 사는 것과 같다.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포기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두려움은 어리석음을 낳고 어리석음은 도태를 생산하며 도태는 멸종으로 이어진다. 무언가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이를 유발하는 두려움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변화로의 노출은 항상 피곤하고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두께는 1cm도 되지 않아 손으로 살짝 밀면 넘어져 사라지기도 한다.


‘그걸 알지만 그렇게 하기 힘든 게 현실 아닌가?’라는 반문이 든다면, 아직은 멀었다. ‘맞아, 그건 그렇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가야 할 만보 중 가벼운 한걸음을 내디뎠다.


깨달음은 말과 글로 보여줄 수 없다. 오직 행동만이 이를 증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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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트리

백엔드 노코드 개발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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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시작과 끝은 같다

항상성과 중용이 일러준 삶의 해답


어느 평일 오후였다.


동료와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디저트로 제공한 아주 뜨거운 커피를 들고 나섰다. 컵 홀더까지 끼웠음에도 맨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던 커피를 들고 오랜만에 운동이나 할 겸 인근 공원으로 갔다. 뜨거운 커피는 잠시 의자에 내려두고 운동을 하고 나서 잠시 후에 다시 커피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방금 전까지 맨 손으로 들기조차 힘들었던 뜨거운 커피는 온데간데없고 바깥 날씨와 비슷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컵 홀더를 끼워도 들고 있기 어려울 정도였던 커피가 5분 남짓 사이에 뜨거운 열기는 사라지고 바깥 온도와 거의 동일한 온도가 된 커피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자연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힘이 작디작은 커피의 열 에너지를 모조리 빼앗아 버렸네.’


뜨거운 커피 안의 열 에너지는 ‘불안정한 상태의 열 분자가 격렬한 운동’을 하는 상태다. 하지만 현재 바깥 온도는 그런 열 에너지를 용납할 수 없기에 작은 컵 안에 가득한 열 에너지를 모두 식혀버린 것이다. 본래, 항상성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생존에 필요한 안정적인 상태를 능동적으로 유지하는 과정을 일컫지만 이는 지구의 환경에도 대입할 수 있다. 즉, 대자연이 태풍, 홍수, 화산 폭발, 지진, 해일 등 다양한 자연현상을 만들어, 단적으로 보면 매우 불안정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하나하나가 모두 지구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항상성은 에너지를 가진 모든 생명, 물체, 환경을 포용하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모든 삶은 에너지의 결정체다

한 생명이 타고난 힘, 크기, 인내, 체력 등은 서로 다르지만 이 모든 게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모두 똑같다. 그리고 모든 에너지는 어쩌면 지구라는 거대한 환경이 가지고 있는 대자연의 에너지에는 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요한 일상에 ‘첫울음’이라는 소리 에너지를 발산하며 ‘정적’이라는 밸런스를 붕괴시켰고, 뜨거운 핏덩이인 채로 태어나 상온의 질서를 해쳤다. ‘생명'이나 ‘탄생'이 해롭다는 것이 아니다. ‘항상성’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생명을 에너지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체는 성장하면서 몸도 커지도 활동반경도 늘어나고, 자신의 성향, 성격에 따라 타 생명체 및 지구에게 수많은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즉, ‘안정’의 측면에서 봤을 때 지속적으로 질서를 무너뜨리고 항상성에 도전하는 삶을 죽는 날까지 지속하는 게 ‘생명체의 삶’이라는 것이다.



출생 이후, 놀이, 교육, 시험과 같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에너지의 발산을 경험하고 합격, 통과, 결혼, 출산, 승진, 성공 또는 그 반대, 안정, 노후, 죽음까지 삶은 출생부터 노후까지 수많은 형태의 에너지를 발산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며 생명으로서 가지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죽은 육신이라는 정적인 형태로 대자연(개미, 굼벵이 등 곤충이나 미생물 또는 독수리, 까마귀 및 들짐승)에게 내주거나 화장을 통해 공기 중으로 산화시키는 형태로 한 생명체로써의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동물, 식물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경미한 공기 흐름의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거대한 변화를 만드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그 단적인 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폭풍우라는 에너지 역시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는 피해와 변화라는 결과를 얻은 채 지구가 바라는 항상성에 더 가까워진다. 물론, 미시적으로 인간은 그 지역을 복구하며 ‘자신들의 삶’의 항상성을 찾을 테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연은 폭풍우를 통해 바다와 강 내부의 생태계를 들쑤시며 생태계 자정 작용 즉, 항상성에 기여한 것이다.


이를 정리해서 보면 ‘나비의 날갯짓’이라는 항상성에 반하는 작은 생명체의 경미한 행위가 결과적으로 더 큰 에너지를 만들며, 인간이 만든 질서와 자연의 항상성에 반하는 결과를 낳은 듯 보이나, 결국 인간의 삶도 항상성을 되찾고, 자연환경도 폭풍우의 정화 작용을 통한 자정을 이뤄내 항상성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모든 것은 대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 세계인들의 사랑(에너지)을 받는 슈퍼 스타 (매우 큰 에너지 발산체)

해외 락 & 팝계의 슈퍼 스타인 비틀즈, 퀸, 마이클 잭슨부터 머라이어 캐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에미넴, 마룬 파이브, 아리아나 그란데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인 슈퍼 스타인 BTS까지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에너지)을 끼치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재 활동하는 가수들을 제외하고,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활동을 하지 않는 스타들의 인기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끓어 넘치던 에너지는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게 돼있고, 젊은 날 주체 못 할 열정은 언젠가는 식게 되어있다.


이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항상성을 찾아가는 자연의 섭리다. 물론, 거시적으로 인간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에너지를 발산하는 스타들은 끊임없이 나오기에, 누군가 인류를 연구하는 또 다른 생명체 혹은 신의 관점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인류’라는 종이 지구 상, 태양계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식지 않고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지구의 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1~2초에 불과했다. 만약, 인류가 앞으로 수 만 년을 더 살고 멸종한다고 하더라도 3~4초에 불과한 반짝이는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인류가, 생명체가 그 어떤 몸부림을 치더라도 대자연의 항상성은 항상 우리를 이길 것이고 이후 우리의 에너지는 대자연에 흡수되버리고 만다.



우리의 감정도 에너지다

기쁨, 슬픔, 분노, 절제, 평안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 다툼, 시기, 오해와 이가 해결되는 과정인 사과, 이해, 화해 등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엄청난 에너지들의 발산과 사그라짐의 연속이다. 사랑의 감정이 처음, 중간, 끝에 따라 작은 성냥불에서 시작하여,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희미한 빛만 아른거리는 숯덩이에서 재가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생명체의 감정도 시작부터 항상성의 법칙과 끝없이 싸우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학교, 직장, 가족 내의 갈등과 다툼도 결국엔 서로 맞지 않는 에너지끼리의 충돌이며 이는 상호 간의 이해 또는 결별로 해결된다. 즉, 발산되던 에너지들이 결국 서로 합치하거나 떨어져 나가 항상성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기쁨, 웃음, 즐거움 등도 마찬가지다. 신나게 놀고 뛰어다니는 것도 항상성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매한가지다. 즐거운 시간도 끝나게 마련이고 신나게 웃다가도 웃음을 멈추고 안정을 찾게 되고 격렬하게 뛰어놀다가도 결국 지쳐서 쉬며 평안한 시간을 갖게 된다.


에너지는 비단 생명체 만의 것이 아니다

태양은 영원히 열과 빛 에너지를 내뿜을 것 같지만 앞으로 수 십억 년 뒤면 사라질 운명이다. 태양 안의 에너지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그 에너지가 사라지는 시점이 궁극적인 항상성을 찾는 안정된 시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힘의 질서, 즉, 태양계 에너지도 언젠가는 무너져 사라지며 태양계 내의 모든 행성과 위성들은 제각각 흩어져 유명을 달리할 것이다. 이는 각 행성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종말을 의미하며 이로써 우리 은하 내 수 조개의 태양계 중 매우 작은 것 하나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소멸되며 우주에 흡수된다. 덕분에 우리 은하도 항상성에 극미하게 조금 가까워질 테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탄생에는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우주 탄생설에 있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정설 모형인 가모프의 빅뱅 이론도 항상성의 법칙을 벗어날 순 없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아무것도 없던 어느 공간에 원시 원자들이 매우 밀도가 높은 상태에서 모여있다 터져 나오며 현재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들이 생성되고 현재의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빅뱅 이후 초기 우주는 온도와 밀도가 매우 높은 원시 불덩이 상태였는데, 급격히 팽창하면서 점차 식어갔고 그 팽창 속도 역시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즉, 이 거대한 우주 역시 원래 안정적이던 어떤 상태를 깨고 발생한 에너지의 발산이며 이 역시,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모든 에너지를 잃고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작과 끝은 같다

한 에너지의 시작은 대자연이 추구하는 항상성과의 끝없는 혈투 끝에 죽음으로 잠들고 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 그저 당연한 이치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동서양의 유사한 여러 철학과 사상은 항상성과 매우 잘 맞는다. 항상성이 '딱, 적당하고 적절한 어떤 상태', 즉, 중간값을 의미한다면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이를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어디에서 그칠 줄을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며 이를 ‘중용(中庸)’이라 일컬었고,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마땅한 정도를 초과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악덕이며 그 중간에서 답을 찾는 것이 참다운 덕’이라고 했다. 이는 불교의 '중도'와 비슷하며, 전체의 핵심이며 상대가치 개념의 중간인 ‘중’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자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얽히고 뭉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이는 장자의 '만물 일체론(萬物一體論)'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은 전체의 한 부분이며 모든 생명체와 사물들은 결국 전체의 조각들이므로 결국 모두는 하나란 것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에너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의 에너지는 마침내 중간값 혹은 ‘0’으로 수렴되어 어느 안정적인 한 형체 또는 한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같다.


게다가 장자의 ‘달관 주의(達觀主義)’를 보면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잘 알 수 있다. 감정도 결국 에너지라고 말한 것처럼 장자는 기쁨과 슬픔을 같은 에너지로 보았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 건 결국 모두 자연의 이치로 봤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섭리에 의해 태어나고 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이라는 에너지를 대자연의 일부로 보고 ‘안정적인 상태’를 이상적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같다.


시작과 끝은 같은 에너지의 발산과 소멸로서 그 합이 '0'이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의 삶, 즉, 우리의 에너지는 죽는 날까지 항상성과 싸우는 순간들의 연속인 셈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동안 삶 속에서 항상성을 실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꼭 노자나 장자처럼 ‘무위자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야만 할까? 그럼 공부는 누가 하고, 회사는 누가가며, 인류의 발전은 누가 책임질까?


바로 휴식이다

충분한 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말, 생각조차 지워버리는 명상 등등.


우리는 너무 바쁘게, 너무 혹독하게, 성장과 성적 위주의 삶을 살아오며 그동안 너무 많은 에너지를 과하게 불태웠다. 그 결과 거시적으로는 환경오염, 생태계 교란, 전쟁, 살육 등 대자연에 거스르는 결과를 낳았고, 미시적으로는 번아웃, 공황장애(화병), 우울증, 사회 범죄, 자살 등 자신의 에너지를 너무 빨리 소진시키거나 타인의 에너지를 빼앗는 항상성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로 개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과 가르침은 어떤 현상이나 고민에 대한 방향성이나 의미를 일러줄 뿐 이를 듣는 개개인인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이를 응용하거나 활용하면 그만이다. 그저 지금 자신이 목매고 있는 혹은 매몰되어있는 상황에 시선과 정신을 ‘모두’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아주 기쁜 일도 아주 힘든 일도 지나가는 에너지일 뿐, 덕분에 하루하루 힘을 내며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자극을 받는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와 감정을 조절하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성공이나 극치감의 끝은 허무함과 같다. 성공한 사업가, 부유한 자제들, 세계적인 슈퍼 스타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우울증, 마약, 범죄, 자살에 훨씬 가까운 삶을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따라서 이를 너무 부러워할 필요도, 그렇다고 너무 회의적으로도 살 필요가 없다.


중간을 지키며, 언젠가는 ‘0’에 수렴하며 항상성에 흡수될 내 삶을, 긍정의 에너지로 평범한 일상을 맞이하다 보면 자신이 쌓은 에너지들이 ‘내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다른 이들이 이를 이어가며 지구에, 인류의 항상성에 도움이 되는 에너지가 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항상성과 싸워 사라지고 마는 에너지가 아닌 항상성이 바라는 에너지가 되어 이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니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써의 삶이라는 에너지를 태워버리는 게 아닐까.


[이미지 출처 및 정보 참고]


항상성: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81923&cid=62861&categoryId=6286

중용사상: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1371&cid=46649&categoryId=46649

장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9318&cid=47323&categoryId=47323

빅뱅 이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43258&cid=47309&categoryId=47309


모든 이미지: https://unsplash.com/s/photos/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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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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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엔드 개발이 처음이었는데 우승을 했다고?!


[제곧내]

백엔드 개발이 처음이었는데 우승을 했다고?!

말 그대로입니다. 개발 경험도 많은 편은 아니었고 더군다니 백엔드 개발은 처음이었다는데 싱크트리로 개발해서 우승을 한 사연 꼭 확인하시고 인사이트를 얻어가세요.😊


• 무려 백엔드 개발이 처음이었다는 지난 시즌의 우승자는 싱커톤을 어떻게 준비했길래 우승했을까요?

우승 비법 확인하기!


[모집 기간 3일 남음!]

노코드&AI개발 경진대회 싱커톤 시즌 2, 노코드 개발 한 번 도전해봐요.💪

• 내 서비스도 만들고 맥북도 받아요!

한번 참여해 보기(:


싱크트리

백엔드 노코드 개발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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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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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 수 없는 것들


아무리 발버둥 치며 알려달라고 애원해도 알려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알려주는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거나 너무나도 많은 경우의 수와 입장의 차이, 그리고 결국 자신이 직접 그 시간에, 위치에, 역할에 도달해보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고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유동적이고 그렇게 흘러 사라져 버릴 것 같으면서도 또 누군가가 알아서 그 역할을 해주는 덕분에 우리는 정이라는 것, 풍습이라는 것, 또는 관습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을 통틀어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원칙에 기대어 인류라는 종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1. 애정의 불문율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감정의 격렬한 격랑의 시기가 있다.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상실감에 몸서리치고,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잔상이 밤을 괴롭히며, 무엇보다 그 어떤 누구로도 대체되지 않는 공허함에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고통의 시기를 지나며 문득 깨닫게 되는 그것.


‘정말.. 사랑이었구나.’


일상의 반복에 익숙해지고, 가까이 있음에 덜 소중하게 대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던 그 사람이 어느 날, 새벽안개처럼 사라지고 나면 깨닫게 되는,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귀는 동안에는 알 수 없는 귀중한 것, 바로 사랑이다.


2. 부모님: 아낌없이 주는 유일한 사람들


연인 간의 사랑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폭포수 같이 쏟아내는 요란한 사랑이라면 부모님, 가족 간의 사랑은 너무 조용하고 온화해서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너무 조용하고 고요해서 그 소중함을 아예 감지조차 못하는 저수지처럼, 부모님의 사랑은 그들이 나이 들고 지쳐 병들 때까지 자식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눈치를 채더라도 그 깊이를 이해하고 가늠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다 보면 문득문득 어머니, 아버지와의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 자신의 모습에 겹쳐 보이는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를 그리며 차츰차츰 깨닫게 되는 지난 시절, 그들의 노고와 사랑에 보답하려 마음먹을 때쯤이나 되어서야 보답을 할 시간이나 기회는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사랑과 보살핌이 얼마나 크고 위대했었는지.


3. 우정: 알고 보면 값비싼 인연


‘친구 아이가’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우정이라는 미명 하에 어떻게 보면 무모할 정도로 감싸주고, 앞뒤 가리지 않고 도와주는 관계를 친구 사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며 모르는 것 없이 친밀해진 사이에는 한쪽이 다른 쪽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마치, ‘친구니까’, ‘친구라서’, ‘친구이기 때문에’를 강요하거나, 밤낮으로 기대하거나,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자고로, 친구는 아낌없이 내어주고 도와주는 게 미덕이라고 했지만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서운함만 앞세운 채 한쪽이 원하는 것을 강요만 한다면 진정한 친구는 사라지고, 다시는 얻지 못할 좋은 우정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함께 후회만 남을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구, 있어 줄 때 잘해야 한다.


4. 세대 차이: 때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은 세상 두려울 것이 없고 에너지가 넘친다. 반면, 이제 중년을 지나 장년으로 넘어가는 50, 60대 어른은 이미 여러 차례 세상을 겪으며 힘은 빠졌지만 이를 상쇄할 만큼 많은 노하우가 생겼다. 하지만 그 노하우가 현세대의 청년들에게 적용된다고 볼 수 도 없는 터라, 이런 이유로 다른 세대에 섣불리 접근하게 되면 소위 말하는 세대갈등이 발생한다. 즉, 청년은 자신의 실정에 맞지 않는 조언이 필요 없고, 장년은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청년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지만 청년이 원하는 대로 알려줄 길이 없다.



하지만, 삶의 해답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보인다. 마치, 안갯속에 싸여있던 풍경이 아침 햇살에 안개를 걷고 얼굴을 내밀듯 당시 그 어른들이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냥, 그냥 저절로 알게 된다. 옳다고 여겼던 자신의 행동과 판단이 사실, 그렇게 옳지는 않았었다는 것을.


그 시간이 되니, 그 위치에 가니 비로소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조언스럽지 않게, 충고로 느껴지지 않게 전달할만한 방법은 딱히 없다는 것 까지도.


5. 직장, 불만: 결국 내 미래에 겪을 눈 앞에 보이는 과거


이들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상황 설명이 어려운 곳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해, 여러 회사에서는 수많은 신입, 중간 경력자, 사장을 포함한 관리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알력이 무수히 발생한다. 그리고 그 갈등의 양상은 보통 아래에서 위로, 대개 이런 한마디의 불만으로 시작된다.


‘아니, 과장님은 왜 맨날 저 일을 쳐내지 못하고 받아오는 거야?’
‘아니, 부장님은 왜 자꾸 퇴근 5분 전에 업무 메일을 보내시는 거야?’
‘아니, 이 회사는 기본 시스템이 이렇게나 안 되어있나? 아무리 스타트업이라지만 다들 어떻게 일한 거야?’
‘아니, 여긴 도대체 원칙이 없나? 다들 어떻게 일하는 거야?’
‘아니, 이 사람들은 지난 수년간 어떻게 여길 다닌 거야? 월급만 받으면 다 괜찮은 건가?’


그리고 이런 불만의 끝은 항상 함께 경영진과 대립하다 퇴사하거나 조용히 이직을 준비한 뒤 회사를 나가버리는 식으로 끝난다. 나도 그랬다. 대립하며 싸우기도 했고, 조용히 이직을 준비한 뒤 슬며시 나간 적도 있다. 회사 내에서의 갈등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하기에 정답도 없거니와 모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성인들이라 무엇이 답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와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잠시 삶을 돌아보며 느꼈던 점을 소회 해보면 대부분 이런 결론에 닿게 된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타협이라고 욕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은 아둔해 보인다고 무시할 수 도 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위한 레이스를 펼치는 중이고, 삶의 레이스는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과 같기에 어찌 보면 아주 돌아가는 길처럼 보일지라도 알고 보면 그 길이 ‘정도(正道)’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나만 정의롭고, 나만 깨어있고, 나만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닌, 오히려, 과거 그들의 그런 선택과 방법이, 시간이 흘러 내가 그 자리에 가고, 그 역할을 할 때 돌아보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 방법이 틀린 방법이 아니라, 어쩌면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구나.’라며 그들을 이해하며, 그렇게 또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사회의 역할과 무대를 넘겨주는 시간이 오면 비로소 알게 된다.



세상에는 역할, 나이, 공간, 지역, 위치, 성별 등 특정한 이유로 인해 지금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설명하자면 구차해서 변명 같고, 설사 설명해도 지금은 알아들을 귀도, 이해할 마음도, 그걸 볼 수 있는 눈도 없기에 받아들일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고 역할이 주어지면 굳이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알고 보니 그것들이 가족을, 사회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고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이 당장은 이해할 수 도, 받아들일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지금은 알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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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톤 시즌 2 공지] 전국 노코드&AI개발 경진대회: 싱커톤 싱커톤 시즌 2


안녕하세요? 싱커톤 시즌 2가 돌아왔습니다! 😊

이번 싱커톤은 한국은 물론, 홍콩까지 진출하여 조금 더 커진 규모로 진행하게되었습니다.

게다가, 싱크트리뿐만 아니라, 블록 스토어까지 오픈하여 노코드 블록으로 개발을 더 간편하게 도울 예정입니다(:


전국 노코드&AI개발 경진대회: 싱커톤은?

노코드와 AI를 활용하여 개인부터 기업까지 원하는 서비스를 빠르고 쉽게 만들어볼 수 있는 노코드 개발대회로 다양한 노코드 툴, 기존 개발 방식 그리고 백엔드 노코드 솔루션인 싱크트리와 노코드 블록 플랫폼인 블록 스토어를 활용하여 대회 기간 내에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참여 자격 정보]

  • 자격: 학생, 1인 기업가, 스타트업, 비개발자, 경력 개발자까지 제한 없음

[개발 주제]

  • 컨셉: 노코드 블록과 AI블록으로 나만의 서비스 개발 쉽게 끝내기!
  • 주제: 자유 주제
  • 예: 노코드 블록으로 서비스 구축, AI를 활용한 서비스 제작

[개발 스텍 조건]

  • 프론트엔드: 노코드 or 기존 개발 방식
  • DB: 노코드 DB or 기존 DB (MySQL 등)
  • 백엔드: 반드시, 싱크트리로 구축

[개발 장소]

온라인 – 개인별 원하는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개발 


[개발 일정]

STEP 1

1. 싱커톤 참여 모집 기간: 06.03 ~ 06.11

2. 셀프 학습 기간: 06.12 ~ 06.16 (싱크트리 스쿨: https://inf.run/E948)

  • 싱크트리 & 블록 스토어 사용 특강: 6/14 수 오후 3시

STEP 2: 싱커톤 시즌 2 시작 및 제출: 06.17 ~ 06.23

STEP 3: 심사 및 최종 결과 공지: 06.30

 

[심사 장소]

  • 온라인 – 심사위원 별 원하는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심사 예정

[수상작 상품]

  • 우승: MacBook 14 Pro 512GB (1인)
  • 준우승: iPad Pro Type 11 6th gen. 256GB (1인)
  • 3등: Apple Watch SE 40mm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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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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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일상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괜찮은 척, 담담한 척, 이겨낼 수 있는 척 살아가고 있다.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해요. 정말이라니까요. 얼마나 자유로운데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깔끔한 소파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캔의 행복을 아세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이것저것 신경 쓸 것 없이, 내 생각만 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있는 시간들, 멋지지 않아요?'
'이 프로젝트 끝나고 해외여행 갈 거예요. 그거 하나면 돼요. 스스로 힐링하는 방법이랄까요?'
'뭐, 가끔은 친구도 만나고, 가족도 만나고, 그런대로 이래저래 교류도 하면서 지내다 보면 아무 문제없어요.'


이처럼 스스로 만들어놓은 여러 장치들 덕분에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학업에서 오는 압박감, 관계 속에서 얻게 되는 분노와 소외감 등 삶이라는 대명제가 엮어놓은 장애물들을 잘 극복하며 살아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정말 스스로 믿는 대로 수많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견딜만하고, 안전하고, 자유로울까? 나는, 당신은, 정말 지금 괜찮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로가 필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계급차로 인한 갈등, 전쟁의 고통, 혁명 등 각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은 지금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 너머, 한 개인이 짊어져야 할 무게와 스트레스의 정도를 ‘개인’의 안녕과 안위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 사회적인 구조, 온라인/오프라인의 복잡한 규율과 수많은 관계망, 넘쳐나는 기회보다 더 넘치는 절망 등 과거의 개인에 비해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라고 외치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들여다보고 ‘정말?’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면, 아마도 사실은 괜찮지 않은 순간, 특정한 시간, 그런 때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이 당신의 그런 순간, 즉, 위로가 필요한 일상일 수도 있다.



# 1

어느 게시판에서 읽은 사연이다. 한 50대 가장이 사업이 망하고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연쇄적으로 들이닥친 주변의 여러 압박에 절망하여 목숨을 끊을 작정을 하고 번개탄을 사서 지방 어디론가 운전하며 내려가고 있었다고 한다. 온통 절망적인 생각에 죽음만을 생각하며 운전 중이었는데, 평소에 틀어둔 라디오(컬투쇼)에서 흘러나온 유쾌한 사연에 피식 웃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차를 세우고 어리석었던 생각을 접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위로도 아닌, 자신을 위한 특별한 라디오 사연도 아닌, 그저 누군가의 재미있는 사연 중 하나였을 뿐이다.


# 2

또, 한 유명한 여가수의 노래 댓글 중 이런 글도 있었다.


‘콘서트 때 이 노래 듣고 눈물이 나왔다. 위로가 정말 많이 되던 곡. 이 덕분에 행복이란 걸 느끼고 이젠 이 노래로 인해 행복을 찾아 살고 있다.’


노래 한 곡. 그저 노래 한 곡이 한 사람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주었다. 이 노래 덕분에 삶 속에서 행복을 느꼈음은 물론, 덕분에 행복을 찾았다고 한다.



# 위로하고 위로받으세요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위로하고, 위로받는데 익숙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항상 대의를 위하고, 단체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른 삶이라는 것에 익숙해 개인의, 자신의 안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살게 한 역사의 유산과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한 민족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라디오 사연 하나가 한 사람을 살렸고, 한 가수의 노래 한 곡이 한 사람의 일상에 행복을 심어주었다. 하물며, 당신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건네는 위로의 힘과, 내가 정말 괴로울 때 다가와준 누군가의 관심은 얼마나 강력할까?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상의 위로는 어쩌면 어색한 마음에 보내지 못했던 문자메시지 하나이거나 전화 한 통일 수도 있다. 내가 힘들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 당신 곁 누군가는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줄 예상치 못한 위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마치, 아무런 의도가 없었던 라디오 사연과 노래 한 곡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고, 일상을 밝게 비춰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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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노코드 개발 실습 워크샵 듣고 서비스 개발하자!


안녕하세요?


한국무역협회와 싱크트리가 넥스트라이즈라는 IT 행사에서 ‘싱크트리로 쉽고 빠른 웹 서비스 구축 전략: 노코드로 서비스 만들기(화면부터 백엔드까지)’라는 무료 노코드 실습 워크샵을 실시합니다!


본 행사는 한국무역협회에서 지원하는 무료 행사이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노코드 워크샵 신청하기: https://forms.gle/3Db9YjGtMvKrG2n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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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연대기 19: 알아. 그냥 모든 게 ‘싫은 날'

*이유없는 혐오와 증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걸, 아이유의 ‘싫은 날’이라는 노래와 엮어 아이유 연대기 시리즈를 통해 써봤습니다. ‘아이유 연대기’는 제 개인 프로젝트 중 하나구요. 최근에 올린 ‘혐오를 혐오한다’와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 글은 특정인의 사건, 의견과 아무런 관련 없는 작가의 픽션임을 미리 알립니다.


마치 세상 속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타인은 행복한데 난 그렇지 못한 이유로, 내게 내민 손조차 위선으로 느껴진, 마음의 여유가 비쩍말라 차갑게 식은 이에게 보내는 역설적인 위로가 담긴 아이유의 '싫은 날'

싫은 날 - 아이유 https://vibe.naver.com/track/3958459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애초에 네가 바란 건 나의 몰락이니까. 으스러지고 바스러져 재가되어 사라지면 그제야 무제한으로 치닫던 혐오와 분노가 사그라져 한 동안은 잠잠해지겠지. 또 다른 골칫덩이가 나타나기 전에 말이야."


약자의 편에서 본 세상은 참 쉬워.


가진 건 끝없이 내뱉을 수 있는 입과 가벼운 손놀림인데, 찰나의 시간에 사람 한 둘 죽이는 건 예삿일도 아니거든. 죄책감 따위는 없지. ‘심심해서, 재미로, 의미 없이, 그냥’ 그랬다는 변명이면 스스로도 책임감을 몇 겹은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총을 들었니, 칼을 들었니?’ 그 말 한마디로 저어기 산 넘고 물 건너 먼 구석에 사는 어린 녀석도 내 심장을 한 방에 후벼 팔 수 있으니 얼마나 쉬워.


그래. 나도 아주 잘못이 없는 건 아냐.


죗값은 처음부터 제대로 치르게 했어야 했는데, 만약, 나의 어쭙잖은 너그러움이 네 알량한 속셈의 화톳불에 숨어든 불꽃이 되었다면, 그건 사과할게, 너 말고, 그 때문에 가슴 아팠을 지극히 정상적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이야.


그리고 이제부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너의 이유 없는 혐오에 대한 책임을 죄 없는 타인이 티끌만큼이라도 짊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응답할게.



하나, 정말 궁금했어.


너의 가시 돋은 혀와 칼날 같은 손은 정말 나라는 존재 때문인 걸까. 혹은 나의 잘못이라고 수집한 무한대로 편향된 것들 때문일까. 보다 보면 나조차도 날 의심하게 되는 그런 것들 말이야.


만에 하나.


나의 성취와 나의 이룸이, 나의 화려함과 나의 빛남이 상대적으로 너의 그늘진 상처에 또 다른 생채기를 냈다면. 별 의미 없던 나의 한 마디와 손짓이, 내 눈빛과 웃음이, 너의 증오는 몰라본 채 마구 쏟아지는 날 향한 갈채가 너의 응어리진 열등을 터뜨렸다면.


나의 따뜻함이 널 더 춥게 만들었다면, 그래 그 정도의 괴리로 인한 서툰 감정의 발산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혐오로 가득 차 한 없이 추운 네 겨울 때문에 타인의 봄날까지 시린 공기로 채울 순 없잖아?
네 봄이 오지 않았다고 이미 흐드러진 봄꽃 나무에 고드름 얼음꽃을 피울 순 없잖아?
네 불편과 증오로 인한 집요한 혐오 때문에 평범한 일상의 평화로움이 부정한 것이 될 순 없잖아?


잘 생각해 봐.


너는 날 왜 싫어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없겠지만 누군가 부추길 수는 있거든.


불평등, 가지지 못함에 대한 부당한 불만으로 그득한 이들의 사상에 마음이 혹하면, 노력이라거나 꾸준함이라거나 또는 정의로움이라는 단어조차 가진 것들의 무기라고 여기고, 이미 오염된 저치들에 선동되어 이성을 잃은 열차에 무임승차할 수 있거든. 그 마음, 나도 겪은 바 있으니. 얼마나 쉬운지 아주 잘 알지.



마지막으로 잘 생각해 봐.


네 삶을 갉아먹는 좀벌레가 타인의 빛나는 일상일지, 썩어 문드러진 네 마음일지. 누군가 몰락하고 나서 얻는 상대적 우월감과 쾌락의 트로피는 과연 어디에 모셔둘 수 있을지. 누군가 밟지 않으면 일상이 전개되지 않는 자의 외롭고 비참한 미래는 어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런 선처를 무시한다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관심 없었잖아 나의 안위 따위는.


그렇다면 두고 봐야지. 곧 내릴 깜깜한 비가 채울 몰락의 도시는 내가 사는 곳일지, 너의 마지막 기회일지.

원본: https://brunch.co.kr/@rooneykim/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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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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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미학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살아야만 하고 살아남아야만 하며 적어도 지금 나의 모습과 생활은 유지하는게 기본적인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식물이라고 두려움을 모를까? 아픔을 느끼지 못할까? 소리내지 않는다고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듯이 두려움과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신호가 다를 뿐,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기본적으로 성장과 번영에 대한 목표가 그들의 DNA에 각인되어있고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의 종족'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사라지지않고 영원히 대를 이어가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 영원불멸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밑바탕에는 '두려움'이 있다. 흔히, 두려움은 나약하고 뒤처지고 퇴보적인 감정이라 사람들은 두려움을 꺼려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생각하는데 실상을 알고나면 두려움이 얼마나 위대한 감정이며 생명체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두려움의 민낯


우리는 대개 '강자', '챔피언', '사장(대표)'들은 두려움이나 나약함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승리의 상징이며 다른 강자 또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기에 두려움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사실일까?


사실, 1등, 챔피언, 왕, 사장, 대통령, 리더 등등 누군가를 이기거나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컴플렉스와 두려움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다고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며 항상 경쟁자들의 도전에 응해야하며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킨다고해도 더 이상 나아갈, 올라갈 곳이 없다는 막연함이나 허탈함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그들을 매 시간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그럼 1등이나 리더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자신이 강자에 비해서는 약자이기에 항상 두려움에 떨며 숨어지낼까? 나보다 강한 누군가가 있기에 항상 두려움에 싸여 지내야 할까?


그런데 그것도 좀 다르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두려움은 겉으로 보기에는 움츠러들고 숨는 부정적인 성향의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않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본능적으로 내가 유리한 방향을 선택하라는 신호이고, 여기서 유리하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피하거나 굴복하거나 패배 할 지라도 미래에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두려움'이 가지는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기능적인 역할이며 그 덕분에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세대에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했고 길어진 생명만큼 자신의 자손을 더 널리 퍼뜨릴 수 있었다.


즉, 약자, 초식동물, 식물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현실은 굴복하되 미래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으며 따라서,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그리고 지구상에 생존 중인 모든 생명체 등 우리 모두는 과거 우리 조상 대부분이 선택한 두려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용감함과 강함이 이런 생존 본능에 반한다는 것은 아니다. 용감함과 강함은 적극적으로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고 용감함과 강함으로 상징되는 소수가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인들, 작가들, 역사 속의 장군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지만 이들은 극소수일 뿐, 대부분의 용감한 자들은 그 순간 생명을 다하거나 잘못되었을 확률이 두려움으로 몸을 피하고 숨었을 확률보다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두려움으로 인한 굴욕적인 굴복(매국 등)이나 배신은 조금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그들 역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짧은 생존을 선택했지만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문화, 민족, 국가라는 개념이 있는 인류는 개개인의 감정, 이권, 집단의식, 민족, 자율권 등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해석이나 결론이 나올 수 있는데 매국노들의 두려움에 의한 굴복은 결과적으로 민족의 말살과 대다수 사람들의 희생 등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기에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반드시 극복했어야했다.


두려움의 다양한 역할


우리는 가끔 다큐멘터리나 기사를 통해서 놀라운 소식을 접하곤 한다. 사자가 어린 사슴을 보호하며 지켜주기도 하고 늑대들이 버려진 아기를 돌봐 수 년을 기르기도 하며 종을 넘어 타 종의 새끼를 맹수들이 보호하거나 잡아먹지않고 내버려두고 가기도 하는 것들 말이다. 보통, 감정이나 이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동물들의 이런 행위는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사실, 이 역시 생명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보호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럼 두려움과 이 사건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모든 생명체의 아기 또는 새끼는 거의 모두 귀엽다. 심지어 나무의 새순이나 어린 시절의 잎도 앙증맞을 정도로 귀엽다. 그 동안 귀여움을 알고 느끼는건 인간들의 고유 감정으로 여겼지만 최근 이 감정들은 동물들도 똑같이 느낀다는 걸 여러 연구들이 보여준다.


즉, 새끼 때의 귀여움은 천적, 버려짐으로 부터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타 동물이나 사람으로부터 귀여움, 애처로움, 보호본능, 모성 등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생명을 연장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생명이 가지고 있는 본능인 두려움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문신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 남아있는 원시부족들이나 과거 원시, 선사 시대의 부족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종족에서 문신, 화려한 색으로 치장 또는 천적과 비슷한 매서운 눈, 이빨 등을 활용한 위장 등 타인, 맹수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위장을 해왔다. 이는 맹금류의 눈과 비슷한 문양의 날개를 가진 나비, 나방들이나 화려한 색으로 몸을 부풀리고 날개를 펼쳐 자신들의 기존 몸보다 큰 몸집을 만드는 새 등이 보여주는 방어 행위와 비슷하다.


즉, 문신의 심리는 두려움의 극복, 강인함의 표출이 기본적인 심리이며 나아가 미적감각의 발현, 소중한 사람/물건, 추억 등의 기념 등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과시 본능이 숨어있는데 사실, 이 과시 본능도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를 좀 알아줘, 이 문신들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물건에 대한 내용이니 알아둬'와 같은 잊혀지거나 무관심에 대한 1차원적인 두려움이 그 바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제 아무리 문신이 패션으로 승화된 지금이라고 하더라도 원시 부족민이, 조직폭력배들이 문신을 한 이유가 강함의 표출이 아닌 두려움이 표출된 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으며 현대의 문신 애호가들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문신으로 승화되었을 뿐, 그 과시 욕구도 두려움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언어라는 체계적인 의사소통방법이 발전하기 전, 아주 먼 과거의 사람들은 소리나 몸짓을 통해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는데 이 방법이 항상 유연하게 소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지역별로 서서히 발전하며 퍼져나갔고 지금에 이르러 우리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의사소통과 두려움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아마도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거나 도와 줄 수 없을 것이고 그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급기야 생존에 위협을 느낄 수 도 있다. 게다가, 상대방이 나의 의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대적으로 나오거나 내가 상대방의 호의를 적의를 받아들이고 공격한다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생존에 위협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소통을 발전시켜왔으며 그 덕분에 언어는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에도 그 두려움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쓰이고 힘을 가진 언어인 '영어'를 보면 의사소통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있다. 영어가 왜 세계공용어가 되었는지는 굳이 역사를 예로 들지않아도 이해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두려움은 또 무슨 상관일까?


그건 바로 전세계 많은 나라들이 영어를 사용하고 따라서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데 답이 있다. 강대국들이 영어를 쓰고, 경제의 흐름이 영어를 쓰는 국가 및 기업들에 의해서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우리가 이 시대에서 살아남고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 역시, 영어라는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부재 시, 도태나 생존의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기위한 두려움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자.


역사적으로 큰 왕국, 국가, 체제, 기업은 공포정치를 이용했다. 즉, 그들이 리더를 따르지 않으면 개개인의 생존에 위협이 가해지기에 사람들은 리더를 따르지않을 수 없었다. 이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서 보여진 두려움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려움은 보통 사람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역사 속의 왕, 대통령 등의 리더도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리더들의 두려움은 보통사람들의 잣대와는 조금 달랐다. 과거의 왕이나 리더들은 다같이 더불어 살고, 믿고, 의지하며 사는 방식으로는 자신들의 체제가 질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공포로 민중으로 다스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주변과 주변 국가 및 전세계를 둘러보자 왜 러시아, 중국, 북한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을 내리며, 사람들의 욕을 먹으면서도 자신의 노선을 바꾸지 않고 체제를 유지하려고 할까?


그건 바로 자신들의 위치와 미래 등 그들의 위치가 흔들려 추락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강력한 두려움이 밑바탕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들은 그 두려움을 '두렵다는 감정'으로 받아들이지않고 '경제유지, 질서확립, 체제유지라는 명목을 내세워 합리화하고 적법화해버리기에 적어도 그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진짜 두려움의 본질은 알지 못한 채 안개 속을 달려가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삶 속의 두려움


부모와 자식, 친구들, 회사 동료들, 선후배들 등등 한 개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원하든, 원치않든 맺게되는 관계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수 십에서 수 천 가지의 관계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을 하고, 기뻐하고, 싸우고, 중재하고, 헤어지고, 이별하며, 또 화해하고, 이해하며, 인정하고, 배워가며 수 많은 관계들을 만들고, 유지하며 또 종종 그 관계들을 정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들어내는 이 '관계'의 저변에도 역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면 어쩌지?', '이 말은 꼭 해야하는데 싸우게 되면 어쩌나?', '내가 한 행동 때문에 그 사람이 앙심을 품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면 어떡할까?' 등 관계라는 건 한 번 시작되면 적어도 몇 번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일이 발생하게 마련이고 그런 사건들의 전후에는 항상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생겨나 우리를 괴롭힌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두려움들은 모두 상대방과 잘 지내고싶은 욕구에 의한 반사적인 심리상태라는 것인데 이를 극복하거나 배려할 때 관계는 더 발전하고 미래에는 부딪힐 일이 더 적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양방이 슬기롭게 알맞은 접점을 찾았다는 전제하에 의한 결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떤가? 이제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항상 자리잡은, 때로는 불쑥 나타나는 두려움이 우리의 삶과 관계 그리고 집단, 나아가 국가나 민족의 운명까지도 좌지우지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 덕분에 인류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도 이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새롭게 바라봐야 할 때이며 두려움을 느낄 때 생각해봐야 할 기본적인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무엇이 두려운가?
왜 두려운가?
어떻게 반응/극복 할 것인가?
이후 기대되는 반응은 무엇인가?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존을 위한 본능의 발현이다. 인류와 모든 생명은 두려움을 이용하고 극복하여 지금까지 자신의 종들을 지구상에서 번성시켜왔다. 만약 앞으로 두려운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느끼는 두려움을 어떻게 활용해서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 것 인가?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과정이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가?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딱히 그렇게 두려운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재빨리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본능의 신호이며 이에 우리는 이제 적절한 대처를 하면 된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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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Rooney Kim

응답을 바라지않는 사람들

그 자체로 그만인 사소한 훌륭함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라면 9호선과 8호선을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날은 친형과 약속이 있어 건대입구로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7호선을 타니 청담 대교 아래를 흐르는 한강과 해 질 녘의 풍경이 굉장히 반갑게 느껴졌다. 7호선 라인을 따라 자취하던 시절에는 매일같이 타던 지하철과 매일 보던 풍경이라 너무 익숙해져 그 가치를 몰랐는데 거의 수년만에 보는 풍경은 잠시 동안 머리를 가볍게 비워주었다.


어느덧 지하철은 뚝섬유원지역에 도착했고 한강뷰는 사라졌지만 상쾌한 여운이 가슴에 남아 복잡한 내 머릿속 생각의 총량에 여유가 생겼다. 그런 기분 알지 않나, 뭐랄까 말랑말랑해진 감성으로 여유로워진 감정의 대역폭 덕분에 지나가다 누가 이유 없이 어깨빵을 아니, 부딪혀도 한 번쯤은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갈 정도로 관대해진 여유로움 말이다.


"이번 정차역은 건대입구, 건대입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음..”


정차역 방송을 하던 기관사님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기고 방송 직후 목소리를 가다듬는 모양이 아나운서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직전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내일은 금요일입니다. 이번 주말은 날씨가 괜찮은 편이라고 하네요. 코로나 때문에, 회사의 업무, 학교에서의 학업 때문에 다들 힘드시죠? 네, 쉬운 게 없습니다. 다들 힘드시겠지만 오늘 저녁은 아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퇴근길 되시고 저는 여러분들을 집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기관사님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승객들의 하루를 차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듯 여기저기로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이어폰을 빼고 방송을 듣기도 했다. 기관사님이 승하차 방송 시 위와 같은 특별 인사말을 전달하는 건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다. 예전에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나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난 이런 방송이 나올 때마다 귀를 기울인다.


기관사님도 출퇴근 멘트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준비하는 메시지가 하루 일과에 지친 어떤 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인,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생각 말이다.


문을 내릴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관사님의 인사에 답할 수 있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을 큰 소리로 내어 알려드릴 텐데.’


하지만 그는 그런 인사를 바라고 방송을 하진 않으셨을 것이다. 기관사님의 방송은 한마디로 '응답 없는 대화'인 셈이다. 기관사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고, 아마도 나를 포함함 몇몇은 그 메시지에 감화되어 감사함을 느꼈을 테다. 답변은 없지만 누군가의 가슴은 따뜻해졌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사실, 우리 삶에는 응답이나 대답을 바라지 않으면서 묵묵히 수행하거나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인사에 대꾸도 않는 상사에게 인사하는 직원들,
인사에 대꾸도 않는 손님에게 항상 인사하는 아르바이트생들.
욕설에도 불구하고 상냥하고 정확하게 전화 응대하는 감정노동자,
무엇보다도, 버릇없고 감사할 줄도 모르면서 백날 바라는 것만 많은 ‘우리'를 묵묵히 길러내신 부모님..


응답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이들 덕분에 사람들은 성장하고 사회는 굴러간다. 우리는 이들에게 한 번도 제대로 응답하거나 정식으로 감사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진정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리는 것’ 일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


오늘 저녁 메시지를 전달해주신 기관사님은 내일도 역시 승객들에게 답변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건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관사님의 방송은 앞으로도 어쩌면 단 한 번의 응답이 없는 단방향 메시지가 되겠지만 그분은 이미 무수한 응답을 마음으로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관사님의 방송은 ‘감사합니다’하고 다가오는 답변을 기대하지 않고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품고 안전하게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승객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우리의 부모님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평생을 바쳐 자식을 키우면서도 그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사회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리 잡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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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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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니의 4월 회고] 사적인 시간에 대한 돌아봄

질문의 재질이 '친구에게 묻는 느낌이라 친구에게 대답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사적인 일과 감정에 대한 회고를 위주로 작성했으니 참고하시고 읽어주세요!


이번 달은 어떻게 보냈니?

4월은 새롭게 준비하는 프로젝트, 캠페인들로 굉장히 바빴어. 모든 일이 그렇듯 내가 원하는대로 하지도 되지도 않잖아?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일을 만들지 않으면, 남이 내게 일을 만들어준다는 거야. 따라서, 항상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행하는 게 습관이 되면 오히려,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거야.


세상은 어떻게 돌아갔고, 네 세상은 어땠니?

ChatGPT가 쏘아올린 거대한 로켓은 이제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꾸는 중이야. 바뀌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건, 우선, 함께 따라가보는거야. 그 후에, 자신 만의 방법, 길을 찾거나 만들면 되거든. 시대나 흐름을 억지로 역행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살다보면 작든, 크든 자신이 흐름을 리드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오게 되거든.


회사 일 말고 오랫동안 글을 쓰고 있는데, 종종 출판사들이 연락이 올때가 있어. 물론, 광고성도 많지. 작년 하반기에 연락온 웹소설 출판사 중에서 같이 연재를 하나 준비하자고 해서 몇개월 동안 글을 쓰며 준비한 게 있어 그런데 연말에 출판사 실수로 접수를 빼먹어서 지난 3월에나 겨우 접수했지만 결국, 좋은 소식은 못받았지. 그런데 그 출판사는 계속 내 에너지를 갉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거기랑은 이제 그만두고 다시 혼자 공모전을 준비해보려고 생각 중이야.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느꼈니?

나이가 들수록 여러가지 이유로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 결혼, 육아, 회사일, 집안 일, 여러 행사 등등으로 우선 사람들의 개인 일정이 너무 바쁜데다, 감정적인 또는 신체적인 건강의 이유로도 만남의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지. 여튼, 4월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냥 두서없이 쏟아내는 안부와 그간의 일을 듣는데도 좋더라. 내가 누군가의 삶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과 누군가에게 내 시시콜콜한 일상의 단면을 열어 자랑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굉장히 건강하고 유익한 일인 것 같아.


좋은 일이 있었니?

몇년 만에 가족, 친척 어르신들을 좋은 리조트에 모시고, 코로나로 못했던 아빠의 칠순 기념 식사를 했어. 서로간 힘들었던 얘기, 오해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에,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어른들의 인사에 뿌듯함이 무언인지 또 오랜만에 느꼈지. 때문에, 효도는 장기 적립식 펀드가 아니라 매일 장보는 것처럼 소비하는 것이란 걸 새삼 깨달았어.


힘든 일이 있었니?

고모님이 돌아가셨어. 굉장히 힘들고 슬프게. 여기서 말하긴 힘든 내용이야. 그것 때문에 어른들도 많이 힘들어하셨지. 나도 많은 생각이 들었어. 고모님을 위해 기도했고 정말 그 곳에서는 평안을 되찾으셨길 바랄 뿐이야.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니?

출판사의 농간에 놀아난 기분? 질이 나쁜 소수의 출판사도 잘못이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쩌면 조금 눈치챘음에도 그런 시그널을 무시하고 의지한 나에게도 좀 실망이었지.


괄목할만한 성취도 있었니?

지금, 현재 가족들(본가, 처가)이 모두 건강하고, 회복 중이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현재가 성취고 기쁨이야.


요즘 무슨 생각을 하니?

우선, 가족과 나의 건강과 안녕이 우선이고, 그 담엔, 회사가 잘 되는 것 그리고 내 글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니?

필요한 것? 내 소설, 나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팬.. 들? 하하🤣


이렇게 돌아보니 한 달이 정리되는 것 같네요. 다른 분들의 회고도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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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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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혐오한다


새로운 혐오의 탄생


서로 미워하면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다.


이성, 동성, 지역, 국가, 인종, 종교 등등 그 동안 쉬쉬하거나, 점조직으로 행해지거나, 역사와 비윤리를 등에 업고 행해지던 혐오가 드디어 보통사람들의 일상의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 보통 사람들은 더이상 '무식'하거나 '권리'가 없거나 '기회'가 없는 이들이 아니고 오히려 '분노'에 차있고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며 그로인해 '자신'의 색을 찾아 공고히 하길 원할 뿐이다.


특정 물건, 성별, 단체, 세대, 인물, 기업, 사회 현상 등을 혐오하는 단체와 사이트는 이제 하루에 한 번 꼴로 그와 관련한 기사가 날 만큼 우리 사회에서 혐오는 일상적인 문제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혐오는 단순히 감정의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를 떠나 특정 물건, 인간, 집단에 대한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변했고 이런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익명의 활동가이거나 집단에 속해있는 무수한 개인들이다.


즉, 혐오는 표출하되 자신은 노출하지않는 이들이다. 이는 인터넷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다는 익명의 사용자들과 유사한데, 그들은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에는 관대하지만 고통받는 대상의 감정에는 극히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비난과 혐오의 표현을 통해 정신적인 승리와 쾌감을 얻길 원하지만 자신들의 신분이나 위치가 노출되어 역비난, 공격 및 자기에 대한 혐오는 피하고싶은 두려움이 함께 존재하기에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혐오'의 속성을 알 수 있다. 혐오는 (누구든 무엇이든) 자신이 극복하지 못하거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자기방어기제의 일종으로 표현된 원시적이고 미성숙하며 유아기적인 전달방식이라는 것이다.


타 인종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단체인 KKK나 스킨헤드 등 의 활동 내용을 보면 혐오를 바탕으로 한 극성 단체들이 얼마나 원시적이면서도 야만적으로 특정 사람, 인종, 대상을 괴롭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들의 잔혹한 행동에 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나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그들은 그들과는 다른 인종이나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고통을 가 할 뿐이다. 그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우월한 자신들의 종(species)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자신들과는 다른 종들에게서 느끼는 불편함을 극도로 혐오하고 그들이 다른 종에 의해 정복당하거나 멸종될 희박한 확률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잊고있던 혐오의 속성


우리는 여기서 혐오는 자기 방어를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제라는 걸 알 수 있으며 혐오라는 감정의 발현 이유가 본능적인 자기방어, 공격, 권력의 유지 그리고 생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온라인에서 설전을 벌이는 모든 형태의 혐오 행위는 모두 원시적이면서도 본능적이고 극단적인 두려움에 의한 자기 절제를 잃은 이들이 집단, 권력 이라는 이름의 망령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혐오의 대상과 혐오를 행사하는 이들의 사회 속에서, 그리고 관계 내에서의 위치는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혐오는 항상 약자를 향해있으며 혐오의 대상은 보통 소수 민족, 단일 민족, 열등 인종, 소수취향그룹, 하위 계층이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역사적으로 여성, 동성애자,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는 상위계층, 정복 민족, 남성 등에게 혐오를 당해왔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는 다양한 대상화(objectification)을 통해 '그들, 그것들은 ~한 존재 또는 ~한 것'으로 규정되어 널리퍼지고 대대로 학습되어왔다.


약자가 강자를 혐오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나 분노의 표출은 대개 '저항, 개혁,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강자의 것과는 전혀다르게 조명되어 왔는데 이런 현상만 보더라도 그 동안 역사적으로 수 많은 강자들이 얼마나 약자 위에 군림해왔고 혐오라는 말이 얼마나 지배적인 단어로서 약자들을 괴롭혀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혐오의 가장 무서운 점은 혐오의 대상을 대상화하고 프레임을 입힌 특정인이나 소수가 아닌 빠른 전염성에 있다. 과거에는 보통 한 마을, 특정 지역 정도에 국한되었던 혐오가 이제는 거의 국가적인 수준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산되는데는 채 몇 시간 아니 몇 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급진적인 확장성과 전염성이 현대 혐오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특정인, 집단을 혐오하는 커뮤니티 내 무수한 익명의 보통 사람들은 그 집단안에서 도덕성이 희석된 혐오 표출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은 물론 자신감까지 얻고 있으니 이런 혐오 행위에 혐오단체로의 가담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혐오를 제한하고 말리기 이전에 혐오라는 것이 이토록 큰 사회적인 현상, 집단간의 갈등으로 대두된 이유와 그 저변을 한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혐오는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우리는 수 많은 문학, 예술 작품, 기록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혐오를 목격해왔지만 지금처럼 사회의 구성원들이 패가 갈려 싸움을 벌인적은 없다. 왜, 어떻게 어쩌다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인구학적/경제학적 이유


1.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제 1, 2 베이비붐 세대의 탄생

세계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을 이후로 그리고 한국은 6.25전쟁 이후, 평화를 지향하는 강대국들의 기치아래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경험했다. 한국 역시 50~60년대 그리고 70년 후반~80년대 베이비붐 세대를 탄생시키며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야기했고 이에 수 많은 인류, 경제학자들은 10~20년 뒤에 닥쳐올 인구증가대란과 경제 및 실업대란을 예측했지만 각 국의 정권은 자신들의 임기내 성과를 빌미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곧 수 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2. 경제발전과 부의 쏠림

개발도상국들의 선진화와 경제발전은 단기적인 수치로는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듯했지만 결국 20:80의 법칙대로 부는 재분배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낙수효과라는 달콤한 말로 대기업을 키우며 중소기업들을 달달 볶았지만 돌 마저 뚫는 낙숫물은 커녕 그 어떤 분배나 나눔도 없었다. 이는 서민경제를 더욱 바짝 조으며 80%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신적인 공황을 초래하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3. 서민경제난

이는 곧 서민경제난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1997년 IMF, 2008년 미국발 모기지론 사태 등을 겪으며 서민경제는 10여년 내 두 번이나 바닥을 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이런 우울한 경제상황은 일상이 되었다.


4. 취업인구의 급진적인 증가

80년대 무분별한 출산 장려 정책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취업대란, 실업대란으로 이어졌으며 현재 30, 40대 직장인, 취업준비생들은 대부분 10대 시절부터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경쟁과 시기, 질투 등을 경험하며 자랐고 이는 취업시장, 직장생활에서도 개인화, 무관심 등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5. 대규모 실업자 발생과 사회적 패배감 확산

결과적으로 대규모 청년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고학력 백수가 천지에 널린 상황에까지 도달했다. 피끓는 청년시절 자신의 꿈은 커녕 평범한 직장생활도 어려워진 젊은 세대는 기형적으로 뒤틀린 사회구조안에서 절망하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6. 3포세대도 옛말, 6, 7포세대 탄생 그리고 확대

'나'가 대두된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 아니다. 나 하나의 삶도 지속하기 버거운게 현대의 삶이고 현재 젊은이들의 미래이다. 여기에 기성세대는 이 시대의 젊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른채 '취업은 했니?, 결혼은 했니?, 애는 언제 가지니?, 연봉은 얼마니?,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할거니?' 등등 젊은 세대의 고민과 고충은 안중에 없고 시대착오적인 질문만하며 오히려 세대갈등 까지 부추겼다.


7. 서민들의 분노와 절망감 해소 실패

이에 서민들, 특히 젊은 서민들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절망에 빠지고 패배감에 젖게 되었다. 대개는 꿈 등 거창한 계획이 좌절되면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통해 안정이라도 추구하며 사회에 적응하게 마련인데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서민들은 그런 기회 마저도 잃게 된 것이다.


 8. 곳곳에서 사회적인 문제 발생

시대의 고난과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 이들은 자연스레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문제가 이해되어진다거나 외면해도 좋다는건 아니지만 사회구조가 그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분노케 했고 전혀 예상못한 곳에서 폭력, 특정인&집단 혐오 등 잘못된 방법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9. 특정 집단, 현상 혐오 발생

그리고 드디어 터질게 터졌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공격해대며 뜯어먹기 바쁘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나 노인들을 무시하고 혐오하기 시작했고 기성세대는 그런 젊은 세대들을 예의를 모르고 버릇없다고 여기며 상종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괄시하기 시작했고 배려나 이해보다는 선긋기와 마녀사냥이 시작되었으며 그들의 주장에 논리나 이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개인주의, 기술의 발전, 혐오의 확산

2010년대 들어서 나홀로족은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2020년대 들어서는 10명 중 4~5명이 혼자 살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의 건강한 관계보다는 온라인에서 익명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정상적인 관계에서라면 억눌렀을 감정이나 조심할 부분까지 스스럼 없이 드러내며 뒤틀린 자아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특정 상대를 맹비난하는 혐오로 변질되어 버렸다.



과거에는 사람들 개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런 목소리가 파급력을 가지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이에 동요된 사람들은 그의 의견에 지지하며 함께 할 수 있다. 며칠이 걸리거나 극도로 계산된 계획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분위기만 잘 탄다면 수 시간내에 자신의 의견이 수 천, 수 만 명에게 전파될 수 있고 단기간에 영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를 좋은 쪽으로만 이용하면 좋겠지만 누군가, 무언가를 혐오하는 창구로 이용한다면 삽시간에 사회 이슈가 되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이고 그 파급력도 엄청나다. 이 모든게 개개인이 대중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불필요한 혐오를 혐오한다


누군가를 싫어하고 피하고 싶을 때 대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직장동료, 친구, 가족 등 주변사람들에게 알린다. 자신의 불편하고 찝찝한 감정을 발설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다. 감정의 발설은 사실,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합리적인 이유없는 혐오와 혐오 행위의 집단화는 더욱 심각하고 절망적인 결과를 낳을 뿐이다. 개인의 혐오는 본능이다. 충분히 이해가능한 범위다. 하지만 지금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집단대 집단, 집단대 개인의 갈등은 그 어떤 칼보다 날카롭고 그 어떤 총보다 고통스럽게 심장을 관통한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집단화된,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거대한 이 시대의 혐오를 혐오한다. 범죄화된 집단 혐오를 일으키는 그들은 사실 갈 곳이 없는 공허한 영혼들이다. 그들도 결국 사회제도의 피해자들이라고 하기엔 이젠 좀 지나치다. 그들의 무의미한 혐오는 혐오하지만 부디 매몰된 감정선을 다시 끄집어내 이성을 되찾고 건강한 감정소비를 하는 날이 얼른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남 탓, 사회 탓만 하며 집단혐오를 일삼기에는 고통받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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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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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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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예의

*2년 전에 쓴 글입니다.


언젠가는 모두 헤어지게 마련이다.


새 물건에 대한 설렘과 흥미는 1주일을 넘기기 힘들고 애지중지하며 아끼던 것들도 언젠가는 헤져버린다. 좋아하는 음식도 두 번, 세 번 연달아 먹기 힘든 법이고, 아끼던 장난감도 어느 날은 도통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좋아하는 음악은 너무 많이 듣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반짝이는 기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형용하기 힘든 공감과 동질감이 가져다주는 안도와 평안,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솟구치는 기쁨의 에너지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하물며,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도 시간이 흘러 떠날 때는 홀로 떠나지 않던가. 모든 생물과 미생물은 각기 다른 생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떤 에너지도 영원한 것은 없다. 제아무리 매력적인 것도 에너지는 유한하다.


나의 첫 차, 엑돌이

2015년 초, 아버지로부터 십여 년을 타시던 검은색 그렌저 XG를 물려받았다. 새 차도 아니었고 그 흔한 블루투스 기능 조차 없던 오래된 차였지만 나는 나의 첫차가 생긴다는 설렘과 기쁨으로 한껏 벅차올랐었다. 아버지께서 워낙 관리를 잘 하시기도 했지만, 엑돌이(XG)는 이후 6년 간 단 한 번의 고장과 큰 사고 없이 나와 가족들을 무사히 지켜주었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애정과 정성을 쏟으면 나를 따르고 나의 편이 되어주듯이 물건과 기계에도 애정을 주면 뭐라 설명하기 힘든 유대감이 생긴다. 사실, 이런 유대감은 사람들의 착각이거나 우연의 일치 혹은 편향적인 정보 수집에 따른 결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대감은 곧 애착이 되고 이윽고 ‘나의 가족’과 같은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흐르면 낡고, 에너지가 빠지고 기운이 쇠하는 것을 피할 순 없다.


2~3년 전부터 엑돌이의 부품들이 노후화되기 시작했다. 매 6개월마다 사전 점검을 받다보니 오래된 부품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유지비가 많이 들기 시작했고 이는 집안 어른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과 우려로 이어지게 되었다. 요즘엔 16년 된 차를 타는 사람들도 많이 없거니와 너희들은 젊은 부부인데 이제 이참에 너희 나이대에 맞는 차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보라는 것이었다.


정비소에서는 관리가 워낙 잘 되어있어서 엔진도 좋고 전체적인 운행에는 무리가 없다고 했지만 수개월에 한 번씩 고가의 부품을 교체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안전과 유지비에 대한 이유로 6년을 함께한 엑돌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국을 누비며 함께한 시간들이 천천히 마음속에 떠올랐다. 천문대에서 차박을 하며 별과 달을 함께 보던 시간, 강릉과 속초의 바닷가 백사장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해, 부산 태종대를 찾아가며 꼬부랑 언덕길을 헤매던 기억, 매년 명절마다 천 km를 달리며 차가운 새벽 공기를 함께 가르고 교통 체증을 피해 국도길을 달리며 노을에 비친 황금 들판을 보던 시간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더 타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이제 주변에서도 걱정을 하시니 내 마음만 고집할 순 없었다. 그리고 원체 차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때문에 새로운 차에 대한 아주 손톱만 한 기대감도 없지 않아 작용했다. 그렇게 엑돌이를 그만 놓아주고 새 차 같은 중고차를 사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중고차 매도 시세를 알아보니 제일 좋은 가격이 50만 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주변에서 폐차를 하면 돈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 폐차 가격을 알아봤더니 오히려 폐차를 하면 80만 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순정 배기관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엑돌이의 배기관은 순정 그대로였기에 80만 원에 결국 폐차를 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3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경제적인 조건도 있었지만, 16년간 아버지와 내가 애지중지 아끼고 고치고 청소하면서 탄 차를 어떤 알 수 없는 사람이 가져가서 청소도,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험하게 타거나, 사고라도 나면 그걸 알리 없는 나지만, 괜히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 곳이 찜찜하고 안 좋았던 것도 한몫 했다.



그렇게 엑돌이와의 마지막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엑돌이의 자동차 정기 점검의 마감 기한 역시 다가오는 중이었다. 정기점검의 마감은 1월까지였고, 그 사이 새 차를 사서 폐차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상식적으로라면 이제 폐차할 차이고 지금 당장 운행에도 문제가 없으니 점검 비용도 아낄 겸 정기 점검을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이미 엑돌이를 위해 마지막 정기점검을 하고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굳어 있었다. 10년과 6년간 아버지와 나, 와이프 그리고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우리의 발이 되어준 아이를 그저 폐차를 할 것이라는 핑계로 홀대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현실 속에서는 미물이고 기계일 뿐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 우리에게는 추억과 고마움이 가득한 소중한 차였다. 그리고 나의 이런 마음에 와이프도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엑돌이 생의 마지막 정기점검은 합격이었다. 아직 몇 년도 더 거뜬히 운행할 수 있단다. 이미 폐차를 결정한 뒤였지만 여전히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엑돌이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스팀 수제 내외부 세차도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수제 세차를 안 한지 반년이나 지나있었다. 그래서 엑돌이를 폐차하기 1~2주 전, 처가댁에 간 김에 엑돌이를 위한 마지막 수제 스팀 내외부 세차를 해줬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비록, 내가 폐차를 결정했지만, 떠나보내는 나의 소중한 것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주고 안전하게 지켜주고 묵묵히 제 일을 해준 나의 큰 애장품인 엑돌이에게 이 정도의 마지막 선물은 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마지막 예의

얼마 안 가 엑돌이는 폐차장 직원의 손에 전달되어 우리를 떠나갔다. 6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엑돌이를 타고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어색했지만, 여전히 경쾌하게 부웅하고 떠나가는 뒷모습이 애잔하고 슬펐다. 유대감, 전우애.. 뭐랄까 딱히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폐차 비용이 들어왔다. 그 돈은 20만원을 더 보태 백만원을 채워서 아버지께 드렸다.


나의 이러한 행동과 감정에 이해를 못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애정을 주고 아끼기로 마음먹은 사람, 물건에 대해서는 항상 마지막 작별까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좀 오버스럽겠지만 오래되어 구멍이 난 양말을 버릴 때도 마음속으로 ‘수고했다’고 전한다. 하하하!


나는 이 모든 사소한 감사와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은행에 저축된다고 믿는다. 그건 마치 나의 선행이 타인의 선행으로 이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아낌과 보살핌이 축적되어 좀 덜 고장 나고 우리를 좀 더 안전하게 지켜주지 않을까 하는 미신적인 마음도 없지않아 있다.


결국, 내 만족, 내 기쁨이겠지만,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예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감사함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이제 세상엔 없지만 마음 속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엑돌아,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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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Rooney Kim

블록 스토어: 보이는 백엔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블록 1편


• 백엔드는 어렵다.

• 노코드? 그걸로 실무를 할 수 있는지?

• 그냥 하던 코딩 할래요.


맞습니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곧, 노코드의 시대가 올 것이고 ‘쉽고 빠른 개발, 백엔드 비용 절감’이 코딩 경력만큼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ChatGPT가 쏘아올린 업무 방식의 혁명은 많은 사람들을 ‘서비스 개발’로 끌어들였고 ‘쉽고 빠른’ 개발 효율이 필요해지면서 ‘노코드 솔루션’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나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백엔드, 블록 스토어!



프론트가 없이는 확인할 수 없어, 백엔드는 개발이나 구성을 설명할 수 없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노코드 블록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구성할 수 있는 시대, 이제 원하는 서비스를 확장성 제한없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만드세요(:


블록 스토어 랜딩페지 바로가기: https://synctree.oopy.io/blockstore_ko


*단, 해당 버전은 초기 공개 버전으로 실제 블록 업데이트는 금일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블록 스토어 사용법은 차주에 콘텐츠가 발행될 예정이며 따로 업데이트해드리겠습니다.

싱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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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ne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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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의 가치

*이번 주말은 외부 일정으로 글을 올리기 힘들어 오늘 미리 올립니다!ㅎ


세상은 항상 변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랬고, 부모님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변화는 새로움과 동시에 두려움이다. 변화라는 것은 마치 삶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비극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 그게 무엇이든 관계없이 '내 고통’이듯, 나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 있는 것이 변할 때 가장 귀찮거나, 낯설거나, 괴롭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국 변화 앞에서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투쟁하거나 혹은 도피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거대한 변화 앞에 가장 소수의 사람들이 이를 주도했고, 변화에 대한 권한이 없던 대다수 중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투쟁했으며, 그 외 대부분은 변화로부터 도피하거나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비율의 법칙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도하거나 투쟁하는 극소수가 될 수 없다. ‘난 달라, 난 투쟁할 수 있어!’라고 해도 당신을 제외한 80%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도피가 과연 나쁜 것일까.


도피, 새로운 주도권

10년도 더 넘게 지속되어온 패션 업계에서의 스키니 열풍에 이상 조짐이 생겼다. 사람들이 자신의 멋을 위해 몸을 드러내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패션은 20년 정도에 한번 크게 변한다고 하더니 드디어 그 거대한 변화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개개인 패션의 다양성은 더욱 풍부해져 유행과는 달리 자신의 멋을 지키는 사람들도 많지만, 소위 말하는 ‘트렌드’는 역시 현대 1020 남녀의 패션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던 크롭티와 통바지가 다시 젊은 여성의 패션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이에 대한 단적인 예로, 당장 지금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패션을 90년대 명동이나 압구정동의 패셔니스타들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나 역시 내가 대학생 시절, 캠퍼스나 길거리에서 보았던 2000년대의 패션들을 2021년의 거리에서 다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타인에 의한 변화는 괴롭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의 측면에서 패션은 훌륭한 도피처다. 내 마음대로 입어도 되고, 유행하는 트렌드를 직접 선택해 결정해도 된다.


언뜻 보면 트렌드를 쫓는 것 같지만 이를 선택하는 결정권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비록 ‘트렌드’라는 거대한 조류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이에 편승하느냐 마느냐는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10~20대가 지난 20여 년간 시장을 장악했던 패션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제어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도망가고 싶지만, 갈 곳이 없고, 현실을 극복해 변화를 주도하고 싶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시대의 패션을 이끄는 젊은 층에서 패션 트렌드가 크게 유행해왔던 것도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불만족스러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자기만족, 자기 보상에 따른 결과다. 패션이야말로 기성세대 혹은 이전 세대의 굴레에서 탈피하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내세우기 가장 간편하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이는 도피에 가깝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변화를 스스로 선택하고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스스로 구분 짓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아직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청춘의 가장 확실한 자기 제어, 자기표현 방법이다.

탈가치, 가치의 새로운 규정

2030 세대는 스스로를 탈가치 세대라고 한다. 하지만 탈가치는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탈가치는 기성의 가치를 벗어나 현실에 알맞은 새로운 가치를 쫓는 중이다. 이는 이제 제아무리 노력해도 이루기 힘든, 전통적인 사회가 규정한 현실에 대한 반항을 넘어, 새로운 세대인 그들이 규정한 새로운 가치 기준을 뜻한다.


사회에는 그 안에서 획득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무수히 많은 가치가 있다.


자취방에서 전세 그리고 주택 구매로 이어지는 ‘주거 가치의 상승’이 그렇고, 연애에서 결혼 그리고 출산으로 이어지는 ‘생활 가치의 상승’이 그러하며, 작은 기업에서 큰 기업 혹은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거나, 사업으로 성공하는 ‘사회적 위치 가치의 상승’이 성인이 되면 누구나 꿈꿔온 대표적인 전통적인 가치들이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신체와 불굴의 의지밖에 없는 청춘들에게 위 세 가지 가치를 이루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이를 두고 기성세대는 ‘야, 라떼는 이래이래 저래 저래 해서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어. 요즘 것들은 의지와 노력이 없어. 쯧’이라는 방구석 할아범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는 소리다.


단순 평균 급여 대비 물가와 현재의 집값 그리고 그 상승세만 봐도 80~90년대의 20대와 현재의 20대가 동등선 상에서 경쟁할 순 없다. 물론, 지금도 좋은 기회가 있겠지만 그런 기회는 역사적으로 그걸 눈치챈 혹은 미리 알게 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려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보통 현대 청춘들의 아픔에 대한 시각을 정의 중이다.


모험은 언제나 두렵지만 짜릿한 법 

전통의 가치를 포기한 그들의 탈가치가 지향하는 곳은 무가치한 곳이 아니다. 스키니 패션에서 크롭티와 통바지로 패션을 갈아탔듯, 현대 청춘의 가치도 ‘전통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지 가치 자체가 사라진 세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도피’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는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주도적인 변화’이자, 생존을 위해 선택한 DNA의 본능적인 행보다.


현대의 젊은 이들은 ‘우리’ 보다는 ‘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중에 또 다른 세대는 분명 ‘우리’에 집중하겠지만 미래의 그들 현실과 현대 청춘의 현실은 또 다르기에 무엇 하나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선, 나에게 집중하고, 주변 사람들이나 직장 생활보다는 자신의 ‘삶’에 더 무게를 두고, 집을 살 수 없으니 좋은 차를 사는 젊은 이들에게 어른들은 꼭 이렇게 한마디를 거든다.


‘너네, 그렇게 해서 노후에 어떻게 살려고? 그러다 큰일 나.’


만약 정 좋은 잔소리를 한마디 하고 싶다면 적어도 주머니에 십만 원 정도는 챙겨주면서 잔소리를 해라. 하지만 그것도 한 번에 십만 원이다. 열 번 하려면 백만 원은 준비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고하니, 현대의 청춘은 그들의 노후는커녕, 당장 1년 뒤의 직장과 6개월 뒤의 월세와 이번 달의 생활비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생계의 시험을 매번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삶 속에서 그들을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건 전통적인 ‘집’이나 ‘결혼’이나 ‘직장’이 아닌 그저 자신의 상황을 100% 알아주는 자신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젊은 세대를 완전히 이해, 아니,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가치’의 기준을 완전히 바꿔 생각해보아야 한다.


두 손이 묶인 채 접시 물에 코가 박혀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는 당장 그를 들어 올려주거나 접시를 치워주거나, 두 손을 풀어줘야지, ‘숨도 못 쉬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스스로 일어나라고 다그치며 거기에, 접시 물에서 빠져나오면 뭐할 건지에 대해 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젊은 세대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들에게 묻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자. 그게 반가운 인사든, 화해의 손짓이든, 도움이 손길이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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