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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수

권인수

자살률 1위 대한민국, 세상을 탓하는 대신, 앱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꽤 큰 시련 앞에 있습니다.

자살과 저출산은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닌 우리의 일상이 돼버렸고, 뉴스를 틀면 혐오와 갈등만이 가득합니다.

사람들도 이제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이랬어”, “어쩔 수 없는 거야”, "헬조선이잖아"

어쩌면 포기보다 절망에 가까울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인도, 대기업도 못 바꾸는데 개인이 뭘 할 수 있겠냐며 사람들은 주저앉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진 것 없고, 창업 경험도 없는 제가, 어떻게 이걸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완전히 추락하지는 않았으니, 뭐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8개월간, 하던 개발 공부도 미뤄둔 채 이 '지옥의 원인'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2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기술적으로 차단한 앱 [필닷],

그리고 경쟁을 연대로 바꾸는 [감사 인사 캠페인].

물론 확신은 없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믿습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포기하는 지금, 조금의 가능성을 믿고 '행동'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아래 링크에 제가 설계한 '새로운 세상의 지도'와 '8개월의 고뇌'를 담았습니다.

이 부족하지만 간절한 제안서에, 귀를 기울여 주시겠습니까?

https://nimble-ferryboat-e58.notion.site/2aab54a1b595803fa123c06c693cc5f9?pvs=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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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수

권인수

저는, 제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부제) [Team 존재의 점] 함께하실 동료를 찾습니다.

1. 나라는 것

나는 내가 제일 싫었다.

항상 거울을 보면 괴물이 있었다.

TV 속에 나오던 연예인들과 동경했던 얼굴과는 꽤 다른 얼굴이, 항상 내 거울 속에 있었다.

매일 밤, 멋진 얼굴의 삶, 돈 많은 삶을 상상하고, 과거의 실수를 생각하며 그저 가만히 있던 나를 때렸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상처'만 남아있었다.

"나는, 왜 사는가?"

어렸을 적, 어른들은 ‘좋은 사람이 되라’, ‘대기업에 들어가라’, ‘높은 연봉을 받아라’ 라는 말을 수 없이도 했고, 수 없이도 들었다. 그 교훈들 속에서, 당신도, 나도, 대한민국 속 우리 모두가 그 속에서 살고 있다.

시험을 잘 보면 칭찬을 받았고, 못 보면 채찍과 훈계를 들었다.

시험을 잘 봐야만, 나는 '좋은 사람'이 됐고, 못 보면, '쓸모없는 인간'이 됐다.

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항상 시험이 있을 때면 이해가 안 돼도 그저 암기로 시험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날 깔볼까 봐, '못된 사람'이 될까 봐 하는 두려움에, 그저 묵묵히 공부했다.

개발 일을 하면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다는 소리에, 연봉이 높다는 소리에,

나도 그저 사람들 따라서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그저, '돈'이었던 것 같다.

웹, 파이썬, C언어, SQL 등을 배웠지만, 항상, '원인 모를, 공허함'이, 나를, 집어삼켰다.

2. 우리 모두의 지옥

사람들은, 그저, '대기업', '높은 연봉', '좋은 집'만을 외친다.

우리는, '좋은 집'을 얻기 위해 태어났는가?

우리는, '대기업'에 가기 위해서 태어났는가?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나'는, 그저, '못된 인간'이 되어있었다.

잘생긴 얼굴이 아니기에, 서울에 내 집 한채 없기에,

좋은 차는커녕 자동차 하나도 없기에, 나는, 그저, '도태된 인간'이었다.

'도태된 인간'이기에, '쓸모없는 인간'이었고, '못된 인간'이었다.

그리고, "못된 인간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무관심과 질책이라는 단어로 사회는 말한다.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국익이 아닌 자신의 지갑을 위한 정책들,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살 가치가 없는' 인간들과, '살 가치'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지옥'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이건, 그저, '나'와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3. 지옥이, 최선입니까?

이 글을 읽는 고마운 당신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오직, '돈'으로만, 행복을, 채울 수 있습니까?”

돈은 참 중요하다. 내 심신의 안정을 책임질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오늘을 깔끔하게, 오늘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 모두 돈이니 말 다했다.

이 만능인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우리는 서울대에 가고, 대기업에 간다. 그러나, 서울대, 대기업의 자리는 언제나 한정되어있기에, 우리는 '경쟁'한다.

내 짝꿍은, 내 서울대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르는 '적'이 되버리고,

직장 동료마저 내 부장, 대리라는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르는 '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오직 '돈'이라는 한정된 파이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우리는,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적'이 된다.

모두가 적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고립된다.

친구와 직장 동료와 얘기하는 순간조차 내 약점을 드러내면 안되고, 내 감정조차 숨겨야되는 세상이 왔다.

행복을 위해 돈을 원하지만 정작 그 돈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다.

심지어 정점이라 말할 수 있는 몇몇의 부자들은 마약에 빠지기도 하고,

여러 뉴스와 통계를 통해 돈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돈이 없다면 불행한건 일부 사실이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소리다.

4. 새로운 가설

비록 나 하나 먹고 살기 힘들지언정,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힘들었기에,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필닷(Feeldot)”, 그리고, “감사 인사 캠페인”.

지난 8개월간, 개발 일도 접어둔 채, "왜 세상은 이런 모습인가?", "왜 우리는 지옥 속에 살고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뭐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는지, 왜 고통받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조금의 가능성을 품고, 두 개의 프로젝트를 하려고 한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챙겨주는 '필닷'과,

'타인'은 '적'이 아닌, '동료'임을 알려주는 '감사 인사 캠페인'.

물론, 이 '지옥'을, '완벽히'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은 없지만..

그치만, 그래도, '발악' 한번이라도, 해보지는, 않겠습니까?

내가 태어났고, 내 추억이 담겨있는 이 나라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불어넣어 보지는, 않겠습니까?

자살과 저출산으로 희망이 꺼져가는 이 대한민국에서, 단 1%의 가능성을, 딱 한번만, 바라봐주면 안될까요?

5.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그저 진부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형편없는 글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나도 내가 얼마나 미성숙한 사람이라는걸 알기에, 이 글을 몇번이나 수정하면서 혹시나 부족한 점은 없는지, AI 도움도 받아가면서 최대한 내 생각이 글로 전해질 수 있게끔 노력했다.

그치만 내 진심은 당연코 딱 하나다. 서로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것.

필닷과 감사 인사 캠페인이라는 두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돈에 대한 욕심도 끊임없이 들었었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 욕심이 올 때마다 6.25 참전용사 분들, 유가족 분들의 슬픔이 담긴 영상, 오늘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담긴 영상, 자살에 관한 뉴스 등을 보면서 내 진심이였던, 내 진짜인 목표를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고, 미래에 내 동료가 되어준 정말 고마운 사람에게 미리 사과를 전하고 싶다.

리더로서의 용기도 가져본 적도 없고, 창업도 처음이고, 비지니스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도움만 받아본 사람이기에 뭣하나 모르는 사람이라고 사과하고 싶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라고 해서 내 동료가 완벽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완벽하지 않기에 내 동료또한 안 완벽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내 유일한 진심인 ‘모두가 진심으로 웃는 세상’이라는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이면 된다.

내 진심이라는 촛불이 욕심이라는 바람에 휘둘릴 때, 내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함께 지켜주고 서로가 힘이 되주는 동료를 원한다. 하나의 촛불이 꺼져도 다른 하나의 촛불이 켜져있다면 그 두 촛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아래 노션 링크를 통해 필닷, 감사 인사 캠페인에 대한 설명과 제 8개월간의 철학이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가볍게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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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수

권인수

우리는 왜, 일해도, 일하지 않아도 지옥에 있는가?

"만약 부자가 된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걱정 없을 만큼 돈이 많다면, 제일 먼저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편안한 자동차를 몰아보고, 멋진 풍경이 있는 집에서, 아무 근심 없이 야경을 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 아마, 당신의 생각도 제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여유를 만끽하는, 꿈같은 하루들.

그치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 이상적인 모습에 비해, 한없이 초라할 뿐입니다. 화려하고 넓은 펜트하우스의 이상과, 좁디좁은 원룸에 살고 있는 나의 현실을 비교할 때. 멋진 차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는 이상과, 지옥철에 몸을 싣고 출근하는 내 모습을 비교할 때.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질 뿐입니다. "언제 그날이 올까" 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오늘의 초라함을 겨우 숨기면서 말입니다.

참 불공평합니다. 어떤 이는 태어나자마자 부자로 태어나서 아무 걱정도 없이 제가 평생을 꿈꾸던 세상을 실제로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습니다. 아무리 불평을 한들 부자가 되지도, 그 부자가 나와 같은 처지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저 시간만 흘러갈 뿐입니다. 우리는 그저 불평만 한 체 또 회사에 출근하고 월급만을 기다리며 몇 주, 몇 달, 몇 년을 회사에서 일을 합니다.

한 가지 알려드릴까요? 부자들도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타는 자동차가 다르고, 사는 집이 다를 수 있습니다만 ‘일’을 하는건 변함 없습니다. 이상하죠? 분명 우리는 부자가 되면 좋은 집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말입니다.

당신에게 유명한 우화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 남자가 천국에 도착하여 기뻐하다가, 일이 없으니 너무 고통스러워 천사에게 아무 일이나 시켜달라 했으나, 천사는 이를 거절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곳에서는 당신에게 드릴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곳이 '지옥'인 이유입니다.”

분명 일이 없고 놀기만 하는 삶은 권태가 찾아오며 그 권태가 당신을 괴롭게 만들겁니다. 근데 이상합니다. 분명 우리는 노는 게 아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중이지 않습니까? 이 일을 하는 것도 지옥인데, 노는 지옥이 일만 하는 지옥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 부분이 좀 의문이었습니다. 분명 일하는 것도 지옥인데, 몸 편히 노는 지옥이 더 낫지 않겠냐고요. 제가 깨달은 부분은, ‘일’ 자체는 분명 축복이며 우리를 권태에서 구원해주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일을 하며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일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게 대체 뭘까요? 방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최소한은 당신이 그 일을 하며 ‘살아있음’이라는 감정이 올라오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 체, 그저 더 많은 월급을 위해서, 더 좋은 성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번아웃과 무기력에 빠져 멈추게 될 것이며 그 인생을 당신의 인생이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들이 각자 원하시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삶이 남들이 보기에 형편없어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그 행동이 당신에게 기쁨과 살아있다라는 감정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의 인생은 그 누구도 욕할 수 없습니다. 각자가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고 색의 차이가 있을 뿐 차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뿐인 당신의 소중한 인생을 부디 후회 없이 살 수 있게 살아주세요.

저는 이 사실을 더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고, 자신만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은 점점 없어지고 현재 번아웃과 무기력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고, 오직 결과만 보는 시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의 꿈이 짓밟히고 있습니다. 저 또한 꿈이 짓밟혀봤기에 더더욱 어떤 고통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은 꿈나무들이 죽기 전에 이를 끝내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필닷(feeldot)과 감사 인사 캠페인을 기획 중입니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기계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강합니다. 부디 제 동료가 되어주세요. 한 분 한 분 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신 분들입니다.

👇 '존재의 점' 팀 선언문과, 첫 동료를 향한 초대장

나이와 경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증명'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를 기다립니다.이 세상을 함께 치유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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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수

권인수

[Team 존재의 점] 함께 일하실 동료 분을 구합니다.

"사람은 곧 숫자다."

우리는 서로에게 묻습니다.

"연봉은 얼마입니까?"

"사는 집은 몇 평입니까?"

"SNS 팔로워는 몇 명입니까?"

마치 한 사람의 가치가, 이 숫자들의 합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 숫자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그 인생을 ‘성공’했다고 부릅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겁니다. 돈이 많아야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납득이 가십니까?

돈이 많을수록 더 성공한 인생이라는 그 공식에, 당신의 마음은 진정으로 동의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노력 없이 얻은 부를 가진 사람도, 우리는 성공했다고 불러야 할까요?

우리는 왜 돈을 벌려고 할까요? 물론,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더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더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이미 '생존'의 시대를 넘어섰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훌쩍 넘었고, 우리는 더 이상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허기져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배'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굶주려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돈, 세계 여행, 멋진 자동차.

저는 그 모든 목표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당신이 그토록 꿈꿔왔던 그 목표를 이루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허무하고 텅 빈 '공허'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쾌락'과 '행복'을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목표만 도달하면 행복해지겠지?" 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행복을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오는 모든 쾌락은, 반드시 '권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또다시 공허함에 휩싸이는, 끝없는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 목표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왜 우리는 이미 무기력과 번아웃에 빠져있는 걸까요?

저는, 그 문제의 뿌리에 '고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한정된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옆 사람을 '경쟁자'로 여기며, 서로를 할퀴고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 싸움 속에서, 우리는 철저히 고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이, 밖에 있는 경쟁자들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나'를, 가장 먼저 미워하고, 경멸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나'를 숨기기 위해, '완벽한 나'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영원한 연극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끔찍하고 가장 깊은 고립입니다.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의 고립'.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는 마지막 동료마저, 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저 또한, 이 고통을 너무나 크게 겪어왔습니다.

소심한 제 성격이, 평범한 제 얼굴이, 저는 너무나 싫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유창하게 말을 섞고, 쉽게 인기를 얻고 싶었지만, 저의 본성은 언제나 저를 가로막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마다 열등감이 솟아났고, 그 모든 화살은 결국 제 자신에게로 향하여, 스스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이 말을 친구들에게나 가족들에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나를 깔보지는 않을까, 부모님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 모든 감정을 제 속에서 묵묵히 썩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제 자신이 유난히 예민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건강이 화두가 되는 요즘, 이것이 더 이상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저를 '필닷'과 '존재의 점'이라는, 이 길고 외로운 여정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지금 동료를 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적이 되어 그 누구보다 고립되어있는 지금 세상에서 상처를 받으셨거나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저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존재의 점' 팀 선언문과, 동료를 향한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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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존재의 점] 세상의 모든 문제의 뿌리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를 욕하기 바쁜 정치.

한정된 자리를 두고 서로를 할퀴는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

우리 사회는 지금, 깊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서로가 적이 되어, 혐오를 멈추지 못합니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그 뿌리에 '증명의 시대'가 만들어낸, 단 하나의 잔인한 '게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의자 뺏기 게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성공', '부', '명예'라는 이름의 의자는 너무나도 적고, 그 의자에 앉고 싶은 사람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 게임의 유일한 규칙은, "남을 밀어내야만, 내가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잔인한 규칙은, 우리의 DNA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가장 위대한 생존 본능, 즉 '협력'의 본능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우리는 동굴 속에서 함께 호랑이를 사냥하던 지혜로운 조상의 후예가 아니라, 구명보트 위에서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을 두고 싸우는, 겁에 질린 생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헐뜯는 이유는, 우리가 악해서가 아닙니다.

이 게임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 속에서 우리는, 두 개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첫째, 우리는 '나 자신'을 잃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증명의 시대'는 바로 그 욕구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가면'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나의 진짜 감정과 욕망을 숨기고, 세상이 원하는 '완벽한 나'를 연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극이 너무나도 길어진 나머지, 우리는 가면 뒤의 진짜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잊어버렸습니다.

둘째, 우리는 '타인'이라는 동료를 잃었습니다.

한정된 의자를 두고 싸우는 게임 속에서, 옆 사람은 더 이상 함께 호랑이를 사냥하던 동료가 아닙니다. 그는 나의 자리를 빼앗을 '경쟁자'이자 '적'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주었던 '연결'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 자신을 잃고, 동료마저 잃은 채, 차가운 세상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이것이, 이 게임의 끔찍한 결말입니다.

이 게임을, 정말 멈출 수는 없는 걸까요?

저희 '존재의 점'은, '의자를 빼앗는' 낡은 게임을 멈추고, '나만의 의자를 만드는' 새로운 게임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여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소셜 앱 'Feeldot'을 짓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도, 이 지독한 게임에 지쳤다면.

만약 당신도, 잊혀진 우리 안의 '협력'이라는 힘을 다시 믿는다면.

저희의 여정에 동참해주세요.

👇 '존재의 점' 팀 선언문과, 첫 동료를 향한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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