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시장에서 Taste의 중요도
점점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운영하는 비용이 낮아지고 민주화 되고 있다.
Chat GPT가 나온 후 내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개발 언어로 어디까지 개발 가능한지 테스트해보고 싶어 나에게는 완전 생소한 Swift를 활용한 간단한 앱을 만들어봤다. Swift의 문법, coding convention에 대한 리서치 없이 바로 만드는 것을 시도해봤는데 mock data를 만들어 mapping하면서 내가 원하는 화면을 구현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코드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대략적인 맥락을 이해하면서 개발이 가능했다.
개발 비용 뿐만 아니라 운영 비용도 낮아지고 있다. 서버를 직접 구축할 필요가 없게 된 클라우드를 시작으로 자동화 툴들, 핵심 비즈니스 외의 것들을 관리해주는 다양한 SaaS 들이 나오면서 운영 비용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요 몇주 동안 화재가 된 AutoGPT는 운영비를 더더욱 획기적으로 낮춰버리는 촉매재가 될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내러티브가 나오고 있다.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반응부터 앞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는 내러티브는 앞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선택하는데 미치는 영향이다.
나는 사람들이 점점 인간다운 면들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관심갖는 인간다운 면은 3가지다.
창작욕
유대감 형성
아름다움 추구
창작욕
디스콰이엇에서 계속 강조하는 창작에 대한 열망은 가장 인간다운 면이다.
지난 주 스티브잡스가 실제 한 인터뷰와 이메일들을 모아 출간한 책인 “Make something wonderful”[1]을 읽었다. 읽으면서 정말 멋진 것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들었다. 그러다 문뜩 이런 느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스티브잡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을때 이런 창작 욕구가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반응이다. 왜 그런걸까?
그 답은 이 책의 제목 그리고 도입부에 있다.
There’s lots of ways to be, as a person. And some people express their deep appreciation in different ways. But one of the ways that I believe people express their appreciation to the rest of humanity is to make something wonderful and put it out there.
And you never meet the people. You never shake their hands. You never hear their story or tell yours. But somehow, in the act of making something with a great deal of care and love, something’s transmitted there. And it’s a way of expressing to the rest of our species our deep appreciation. So we need to be true to who we are and remember what’s really important to us. -Steve Jobs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욕망 중 하나가 나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것이 아닌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을 충족하는 방법 중 하나가 멋진 것을 창작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이런 욕망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접해보면 창작자의 깊은 고민과 사랑이 전달된다.
스티브잡스의 이야기나 애플의 제품들, 픽사 영화들을 보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려는 깊은 애착이 느껴진다. 이런 애착이 느껴질때 우리 또한 멋진 것을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유대감 형성
이런 애착을 감지할때 우리는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멋진 제품을 보면 우리는 호기심을 느낀다. 이런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그 제품의 창작 스토리를 찾게 되고 창작 과정에서 창작자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파고들게 된다. 스토리를 읽어나가면서 호기심은 경외심으로 바뀌고 유대감이 형성된다.
우리가 브랜딩이 잘되어있다고 여기는 회사들을 보면 제품과 회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고민들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어 있고 사람들이 그 브랜드에 감정적인 유대감을 느낀다.
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가장 잘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최근 Linear라는 제품이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디스콰이엇에서도 도입하게 되었다. 처음 접했을때는 기존 프로젝트 관리툴 대비 심플하고 보통 팀들이 겪는 제품 개발 과정을 잘 고려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호기심이 생겨 그들의 미션, 제품 철학,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2] 등을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 점점 이들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창작자와 소비자 간의 유대도 있지만 이를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유대도 있다.
내가 개발에 기여한 제품이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에 대한 로망을 처음으로 해소해본 것은 첫 회사에 다니면서였다. 그때 Fitbit 디자인에 참여를 했었고 Fitbit은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사용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 개발에 참여한 것에 큰 보람을 느꼈지만 이보다 더 큰 충족감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꼈다. 같이 디자인하는 팀원들과 매일 밤늦게까지 디자인과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Fitbit을 디자인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때 일이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디자인과 기술에 열정이 많은 사람들끼리 취미 활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 디스콰이엇에서 팀을 만들어나갈때도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이렇게 공동의 미션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열정을 교류하고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름다움 추구
강한 애착이 담겨 있는 것들을 보면 미적 아름다움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이런 미적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가치있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는 사회가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지와 관련있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잘 곳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소속감, 인정, 자아 실현 등을 중요시하며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자아 실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프트웨어의 생산비용이 낮아지면서 소프트웨어 시장의 물질적 풍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은 소프트웨어를 선택할때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미적 아름다움은 단순히 보이기에 이쁜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능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넘어서 즐거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요소들이 담긴 것을 이야기한다.
이미 이런 현상은 B2B SaaS의 흐름을 보면 보여진다. 예전에 B2B 제품을 생각하면 미적 아름다움은 제품이 시장으로부터 선택을 받는데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소프트웨어를 경험하면서 소프트웨어의 기준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이런 높은 기준이 B2B로도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앞서 말한 확고한 제품 철학과 스토리텔링 역량으로 무장한 Linear같은 제품이 이미 포화된 프로젝트 매니징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생기게 되는 소프트웨어 시장의 풍요는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선택할때 미적 아름다움을 점점 중요시하도록 만들 것이다.
결론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내용들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계속 이상을 쫓아오고 있다. 평등, 평화, 민주화를 계속 쫓아오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기술적 발전을 이루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급진적인 변화로 기대감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피로함이 높아지면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들을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원래는 관심이 없던 에세이를 읽어보기도 하고 Linear 같이 진정성을 갖고 제품을 만들어가는 메이커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 피로함이 상쇄되는 느낌이 든다.
이또한 내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다움을 느끼고 싶은 욕구에서 나오는 것 같다.
참고 자료
[1] 스티브잡스의 인터뷰와 이메일들을 모아서 만든 책: https://book.stevejobsarchive.com/
[2] Linear의 제품 철학을 읽고 적은 메이커로그: https://disquiet.io/@hpark0011/makerlog/7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