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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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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절한 개발 실패기 - 3(마지막)

오늘은 그냥 마지막까지 달려 나가겠습니다. 이게 뭐라고 마치 소설 연재하듯이... 일도 해야겠고.


한국의 에이전시와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우연히 알게된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Chime이라는 Uruguay에서 개발에이전시를 하는 친군데 유태인으로 이스라엘에도 개발에이전시를 갖고 있고 당시 팟캐스트에도 나와 자기가 왜 스타트업들의 개발문제를 도와주는지 얘기도 하고 뭐 그런 친구였죠. 그 친구에게 한국의 에이전시가 던져주는 나로서는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도움을 받곤 하던 친구였는데 결국 이 친구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그 친구에게 소스코드를 던져 주고 이들을 통해 내 꿈을 이어가 보기로 다시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안드로이드 개발자, 베네주엘라의 서버개발자 및 콜롬비아의 웹서비스 개발자 등과 리모트 개발이 시작되었고, 약 6개월의 작업의 결과는 Bug 투성이의 작동을 해주면 고맙고 안하면 할 수 없는 그런 앱이었습니다. 이들과 작업하면서 프로그래밍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고, 디지털 세상에도 벌레들이 엄청나게 서식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소스코드를 붙잡고 이번에는 그래도 유럽애들이 좀 수준이 낫지 않을까 싶어 네덜란드 팀을 고용해서 다시 몇개월간 씨름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3개의 대륙을 넘나들며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 녀석은 거친 숨만 까딱댈 뿐 그다지 나아지는 기미가 없더군요.


그때 생각 했습니다.

개발은 외주로 해서는 답이 없구나! 내가 직접 in-house 개발자를 두고 해야 하는거구나!


Angelist에 CTO 코파운더를 찾는다는 포스팅을 올렸고 제일 먼저 연락온 친구가 David였습니다. 체코의 2x exit까지 일궈낸 체코에선 나름 인지도가 있는 친구로 체코 redhat의 창립멤버였던 엔지니어 출신이었지요. 화상 미팅을 통해 몇 차례 대화를 나눴고 내 꿈에 크게 공감하면서 기꺼이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습니다. 영어도 유창했고, 그가 가진 여러가지를 봤을때 이만한 파트너는 없겠다 싶어 즉시 체코로 날아가 그를 만났고, 프로젝트와 지난 2년간의 여정을 소상히 들려줬고 나를 위로하면서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와 격려까지 받았습니다.


체코에 법인을 설립하고 개발자들을 직접 뽑아 개발을 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명성과 인지도가 있어 사람구하는건 일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더군요. 법인을 세웠고, 이제 개발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그가 전담하기로 역할 분담까지 마치고 나니 바야흐로 날아갈 것 같더군요.

법인이 세워지고 한달이 지나도 사람을 못구했습니다. 당시 체코는 양질의 동유럽 출신 개발자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 덕분에 R&D의 허브로 성장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개발자들을 거의 싹쓸이를 해대던 와중이었죠. 우리가 개발자를 인터뷰하는게 아니라 개발자들이 회사들을 인터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은 못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맨파워 업체들을 통해 급한대로 프리랜서들을 고용해서 시작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그런 과정을 통해 3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2명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주니어 개발자들을 데리고, 하지만 열정과 에너지는 충만하던 아이들이어서 정말 열심히 했지만 David는 전혀 이 프로젝트에 관여를 하고 있지 않았던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결국 David를 정리하고 다시 내가 개발을 리딩해야 하는 상황이 됨에 따라 아예 거처를 체코로 옮겨 일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2018년 말쯤, 안드로이드 버전이 나왔습니다. 나오긴 나왔는데 도저히 써먹을 수준이 되질 않았습니다. 베타 사용자들을 모으러 데모하는 와중에도 Freezing과 Down이 수시로 일어나는... 지난 몇년간의 시간과 노력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꿈이 산산조각나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때 충고를 들려줬던 후배의 말이 진지하게 생각났고,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 왔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시 시작하자!"

어차피 개발자는 있으니까 다시 하자. 처음부터.


피벗과 함께 PWA로 개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몇 달을 죽어라 족쳐댔고 2019년 5월 제1회 UNWTO (UN세계관광기구) 주최 Hospitality startup competition에 참가하여 우승을 하는 영광을 누려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상태는 여전히 진행중이었고,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만 아니 수천만가지 이유로 딜레이는 끝도 없이 이어지더군요. 그 와중에 개발자들끼리 불협화음도 생기고... 문화도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다른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출신 3명을 조율해가랴, 일 진행시키랴,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하랴...

2019년말 UNWTO Competition 우승 상으로 받은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2개월간 진행을 하고 드디어 2020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파일럿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드리드 시내 약 50여 군데 레스토랑들을 대상으로 시작하고 3일 후 코로나가 스페인을 락다운 시켜 버렸습니다. 예고도 없었고, 아침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락다운이 시작된 것이죠.

2주를 아파트에서 어찌될 것인지를 예의 주시하며 버티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런던을 거치는 British Airways 편으로 귀국을 하면서 나의 처절한 개발 실패 스토리는 막을 내립니다.


우연치 않게 시작한 실패기를 접으려 합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창업자들이 많겠지요? @이홍열 님 말씀처럼 성공율이 30-40% 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가지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한 성공은 힘들지 않나..라고.

첫째, 내가 뭘 개발하려는지에 대한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둘째, 정말 능력있고 신뢰할만하며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는 개발자를 만나야 한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그 개발은 성공가능성이 이미 50% 이하에서 시작하지 싶습니다. 그 개발자가 외주 개발자든 내가 월급주는 개발자든, 아니면 심지어 코파운더이든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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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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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절한 개발 실패기-2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오기전 관심을 가졌던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사실 이곳이 개발을 할 수 있는 곳인줄은 몰랐고 이 업체 홈페이지에서 자체 개발했다고 하는 비콘(beacon)에 관심이 있어 이를 활용할 방법을 의논하기 위함이었는데 만나서 미팅을 하다보니 외주 개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개발 관련 협의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때도 지금처럼 wishket 같은 서비스가 있었더라면 뭐가 좀 달라졌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개발 과정이 블랙박스와도 같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나로서는 그들이 내 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의 신도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그리고 tech에 무지하기만 하던 내게 그들의 언어는 다른 세상의 그것과도 같음에 다른데는 알아볼 생각도 않고 그들을 덥썩 껴안았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이거 프로젝트가 너무 커서 아무리 빨리해도 7-8개월 이상은 잡아야 겠습니다."
"그렇게나 걸리면 안됩니다. 3개월만에 끝내주시죠."

정말 해서는 안될 짓만 골라서 했습니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구체적으로 견적을 내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억 5천 이상은 들겠는데요."

아무튼 견적서를 받아 보았고, 서버 1명, 안드로이드 1명, iOS 1명 그리고 PM 1명... 뭐 이렇게 투입되는걸로 하고 개발기간은 3-4개월, 금액은 무려 1억5천만원에 계약을 했습니다.

"아..그리고 소스코드는 드리지 않는거 아시죠?"
"네? 소스코드는 당연히 주셔야....?"
"그게요.. 이것도 일종의 저작물이라 소스코드는 안드리도록 표준계약서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진즉에 알아봤어야 하는데도 눈에 뭐가 씌이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앱개발기획서라는걸 만들어본적이 없어 얘길 하니 전체 팀과 와이어프레임을 놓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PM이 정리해서 기획안을 준비해서 개발 시작전에 최종 컨펌을 받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많은 외주개발을 해봤지만 이 정도 해온 경우도 흔치 않은 일이다... 프로젝트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자신들도 단지 외주 이상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한다.... 등등.

3-4개월 후면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매일 출근하며 점심, 저녁 사먹여가며 그들과의 친분도 쌓아나갔고 그동안 목말라 했던 많은 것들을 배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기 며칠 전, 아직도 기획서는 전달이 안되었고, 나의 재촉에 그들은 정리가 되는대로 이메일로 보낼테니 걱정말고 돌아가라는 대답에도 그들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기에 결국 다시 사막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기획안이 도착을 했는데 허술해도 너무 허술한겁니다. 그런데 경험이 없으니 판단을 할 도리가 없었고 뭐 충분히 설명을 다하고 왔으니 개발에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는 환상에 여전히 빠져 있었죠. 아마 이 분야를 조금만 아는 누군가만 옆에서 도와 줬더라도 첫단추를 이렇게 엉터리로 꿰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와서도 나의 생각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고, 드디어 디자이너와 화상을 통한 미팅이 개시 되었습니다. 나의 진화(?)된 아이디어를 디자이너는 전혀 거르지 않고 디자인에 반영하였고 이것이 그들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들을 여기했는지는 전혀 모른채 나는 나대로 쉬지 않고 진화를 이어나갔지요.

한달쯤 지날 무렵 에이전시의 김이사라는 친구가 연락이 와서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는 문제제기를 합니다. 뭐가 문제냐... 자꾸 변경을 요구하는데 이러면 개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아니 이 정도가 무슨 변경이냐... 그것도 변경이다... 아직 거기까지는 개발 하지도 않고 있지 않느냐... 그래도 문제가 된다... (이거, 아주 흔한 상황이라는거 오래 후에 알았고, 그게 정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 직접 개발을 하면서야 깨달았습니다 ㅠ.ㅠ)

다람쥐 쳇바퀴 도는 argue가 이어졌고, 그 와중에도 PM이라는 친구는 전혀 관여하는 모습이 아니 보이고.. 그렇게 두달 넘게 진행이 되어도 내 눈에 보여지는건 없고.. 조금씩 퀘스쳔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아니 프로그래밍이라는 단순 정확함을 믿고 있었기에 "뭐 잘되겠지"만 되뇌이며 기다렸습니다.

많은 오고간 conflict는 대략 생략하고...

그해 11월쯤, 이미 4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기에 처음으로 독촉을 시작했고, 몇 차례의 critical한 argue 끝에 서울에 나오면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확답을 듣고 드디어 두번째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여전히 이번에 가면 테스트를 거쳐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드디어 세상바꾸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신앙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케익을 사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들어섰습니다.

반가워는 하는데 어딘지 석연치 못한 표정들. 아무튼 차한잔 마시면서 잠시 의례적인 인삿말을 나누고는 테스트를 요구했는데 그 어느 곳에도 테스트는 없었습니다. "아직 준비가 조금 덜 됐다"는 말뿐. "그럼 왜 오기전에 연락을 주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오시자마자 이렇게 바로 사무실로 오실줄은 몰랐다는.." 다소 황당한 변명까지. 며칠내로 테스트가 가능하다는 위로를 뒤로 하고 그 며칠 후 다시 찾은 그 사무실에는 클릭 한 번 하면 뭔가 변화가 생기는데 최소 20-30초는 걸리는 이상한 생기다 만듯한 앱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전과는 달리 문제를 설명하는데는 별의별 기술적 용어들이 난무하고 들어도 이게 무슨 말인지 잘 해석이 안되는 설명만을 듣고 앉아 있으면서도 "원래 앱개발이 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는 그들의 설명에 나 자신도 "그럼 그렇겠지. 뭐 한 번도 되기야 하겠어?"라며 스스로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황당한 상황에 자청해서 compromise를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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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그들이 처음 제시했던 7-8개월도 훌쩍 넘어서고 있었지만 내 꿈을 담기로 되어 있던 앱의 상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부적으로 복잡한 일들이 터지면서 개발자 한 명이 퇴사를 하네마네 하는, 그래서 내가 그에게 차라리 그럼 나랑 일을 하면 어떠냐고 제안을 하는 코메디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만난 PM으로 일하는 후배가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형, 거긴 아닌 것 같어. 그냥 소스코드 받아서 다른데 알아보는게 낫겠어. 그리고 참고로 말하는데 만약에 소스코드에서 30% 이상 손을 대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시 개발하는게 나은거야. 그거 살리는게 시간도 돈도 더 깨져."

믿어야 좋은건지 무시하는게 좋은건지 전혀 판단이 서질 않는 엄청난 충고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약속한 개발비는 잘도 챙겨가고, 대화가 점차 심각성을 더하면서 "사실 그 금액에 저희가 이런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을때는 사실 지분에 대한 대표님의 배려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미 약속한 개발비는 거의 투입이 된 상태에서 소스코드라도 달라, 못준다의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시작한지 1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너덜너덜한 소스코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소스코드를 기반으로는 모바일 상에서 거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데 있었지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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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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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절한 개발 실패기-1

@이홍열 님의 개발성공율 관련 포스팅을 읽고 10000% 공감하면서 인생에서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나의 처절한 개발 실패의 경험이 또렷이 되살아 났습니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창업을 준비중인 분들이 개발이라는 큰 산을 앞에 두고 계시겠죠?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시길 바라는 차원에서 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당시 저는 중동의 어느 도시에서 나름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딱히 부족한 것도 없었고 시간은 많았고 매일 골프나 치면서 사실 시간을 죽여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게 과거의 한시점은 떨쳐 버릴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닷컴 버블 시절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한창 나이에 뭔가 엄청난 회오리가 몰아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이 그것이었는데 당시의 닷컴 버블은 지금과는 좀 달랐던 것이 지금보다 훨씬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디지털 마인드나 기술이 없었던 저로서는 마치 파티장 밖에서 그들만의 파트를 들여다 보는 것 같은 쓰라림이었지요.


2007년도에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바뀌어 갔고 세상 신기한 것이 요 조그마한 스마트폰 안에서 별의 별 것들이 다 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왠지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많이 쉬워진 듯한 착!각!이었죠. 물론 그전이나 그때나 내 디지털 스킬은 그저 웹서핑이나 하고 워드나 액셀 간단한 것들 하는 수준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이홍열 님 말씀대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뭔가 로직을 잘 준비해서 프로그래머들에게 맡기면 프로그래밍 한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척척 진행될 것이라는 지금보면 그저 황당무계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요물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이런 것도 되겠네", "저런 것도 되겠네"... 하는 대화를 수도 없도 했던 것 같고, 어느날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I was fascinated!!!! 이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습니다. 마구 흥분이 되었고 이걸 앱으로 만들어만 내면 정말 세상을 바꾸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쯤해서 많은 분들이 이 단계에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이디어는 떠올랐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아는게 없었죠.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들려주니 다들 손뼉을 칩니다. 내 생각에 확고함을 너머 거의 신앙으로 굳어져 가는 과정이지요. 나라도 내 가까운 지인이 자신의 아이디어라면서 들려주면 손뼉 쳐 주었을텐데. 돈드는 일도 아니고. 아무튼 이걸 해내기만 하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앙이 들어서자 이제 남은 일은 방법을 찾는 거였는데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닥치는대로. 뭐가 우선인지 뭐가 효율적인지 조차 판단이 안서다보니 그냥 궁금한 건 뭐든 공부를 했는데 정말 중요한 한가지를 빼었었지요. 코!딩! 그때 차라리 코딩을 공부했더라면 정말 세상을 바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말한대로 프로그래밍은 정말 단순한거라 정확하게만 준비해서 개발자들에게 주면 개발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쯤 처음으로 접하게 된 낱말이 바로 스타트업이었죠. 과거 닷컴 시절을 대체하는 새로운 세상이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명찰을 달고 눈앞에 나타났음을 깨닫고 나니 하루하루가 흥분의 연속이었습니다. 드디어 나도 이 판에 들어가는구나.. 남편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울 순수한 마눌님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말입니다. 거의 7-8개월 이상을 학습에 매달렸습니다. 그때 UI/UX를 다 배운 것 같네요. 와이어프레임도 수십번 갈아엎어 가며 만들고, 지금은 우스워졌지만 프레이머니 오리가미니 하는 프로토타이핑까지 배워가며 마치 개발 완성 단계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이제 개발을 맡기기만 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뭐 당연히 IT강국인 한국에 가면 능력있는 개발자는 얼마든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나의 기대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만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어느 여름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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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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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장사가 돼? 말이 돼?

저는 바둑을 전혀 둘줄 모릅니다. 그래서 바둑이나 기원, 이런데 대한 지식이 전무하고 비즈니스적으로도 어떤지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제가 언급하는 바둑 관련 이야기는 그냥 어쩌면 무식의 소치일지도 모르니 혹시라도 바둑애호가나 관련쪽에서 일을 하고 계신 분이시라면 그냥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길을 걷다보면 정말 쌩뚱맞다 싶은 업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앞서 양해를 구했듯이 내게 있어 그 중 하나가 기원인데 바둑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 있어 번화한 거리 제법 그럴듯한 건물 3-4층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걸 보면 늘 머리를 갸웃거리곤 한다.


"저 자리에서 기원이 되나?"


뭐 꼭 기원이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의문을 갖게 하는 비즈니스들은 사실 많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그곳에 좌판을 펼친 주인장의 입장에서는 손바닥에 침을 뱉고 탁 쳐서 침이 튄 곳에 무작정 자리잡은 것은 절대 아닐 것이기 때문에 본인으로서는 진지한 고민과 오랜 숙고, 그리고 많은 비교와 검토 끝에 그 자리를 점지하고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을 그곳에 던진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이 자리에서 이게 돼? 말이 돼?" 같은 질문을 받으면 정말 기분 나쁘고 마음같아서는 한대 쥐어 패고 싶을거다. 사람에 따라서는 기원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기원을 바라보며 한심한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로 누가 봐도 안되는 걸 본인만 된다고 믿고 헛짓을 하는 경우도 분명 있겠다.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도 생소했던 내가 나름 그 바운더리를 넘나들며 여러 해를 지나면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보면 스타트업 판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봐도 딱 보면 그냥 개인 비즈니스 정도의 BM인데도 거기에 굳이 스타트업을 끌어다 들이대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반대로 내가 보기엔 아무리 너그러워 지려고 해도 도저히 이건 스타트업 판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데도 거기에 덜컥 펀딩을 제공하는 VC들도 보면서 종종 혼동스러워지기도 한다.

이제 또 한해가 음력으로도 시작 되었으니 내 구리디 구린 구력에도 +1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움 때문에 당분간은 좀더 숨을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두 달 갖고는 아직은 어림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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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Rhee

John Rhee

오랫만에 복귀했습니다. 우선 사죄 말씀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2023년에는 크고 작은 소망들이 이루어지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너무 오랫만에 디스콰이엇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를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간 활동해 온 스페인을 떠나 한국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입니다. 오랜 해외 생활에 마눌님께서 많이 지치셨고 많은 고민 끝에 완전 귀국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다 보니 정말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제 두 달쯤 되어가다 보니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만 여전히 생각지 않은 것들이 툭툭 튀어 나오네요.

한편으로는 이제 우리 회원님들과 한 하늘아래 있게 되어 아마도 좀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 분께서 가입신청을 해주셨는데 수락이 늦어진 점도 아울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제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안정이 확보된 만큼 우리 버블버블 커뮤니티를 보다 활성화하는데 더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사죄 받아주셔서🤣 그리고 복귀 환영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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