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속 꿈에 대하여
최근 3~4개월 동안 정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다 나아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무기력을 내가 가진 언어로 정의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 보인다.
언젠가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게 된다면 꼭 글로써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지만, 정작 그 상황을 실제로 겪고 있는 동안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무섭고 무게감 있게 다가와서 엄두도 내지 못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꽤나)큰 용기를 내어 한 자씩 써 볼 생각이다.
(그래서 글이 정말 두서없고 길 지도 모르겠다🙄)
2024년이 되면서, 여지껏 나를 보듬어 준 '학교'라는 집단과의 연을 마무리지었다.
대학 진학을 잠시나마 고민했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대학 진학은 하지 않았고 내 '꿈'을 사회에서 좀 더 키우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큰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 스스로가 그 '꿈'에 대해 정의내리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작년의 나는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나 보다.
학교 졸업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수능이 막 끝났을 무렵부터 나는 학교를 통한 기업체 현장실습에 나가게 됐다.
지역에 있던 그닥 크지는 않지만 꽤나 비중있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는 IT 계열 회사였고, 나는 학교 전공에 맞추어 경영지원실에서 한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그 전까지의 나는 '틀에 갇혀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때부터 온라인 속에서 줄곧 '프리랜서'처럼 일해왔고 또 최근 1~2년동안은 나름 '창업가'로 보낸 시간도 또래의 남들보다는 꽤 빠른 경험들이었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다 인생 처음으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지시받은 업무만을 수행하면 되는 정말로 수동적인 업무를 하게 된 건데, 이 한 달의 시간이 그닥 힘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 내가 아는 것보다 사회라는 것은 훨씬 어렵다는 것, 나름의 '선의'는 자칫 '오지랖'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 또한 사회라는 것, 어쩌면 안타까운 얘기일 수 있겠지만 너무 안정적인 환경 탓에 도리어 내 스스로가 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것 등등등.
현장에서 업무를 배우기보다는 지금까지의 내 생각과 가치관을 돌이켜 보며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고, 결국 실습 종료를 2~3일 앞두고는 이런 내면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꽤나 심하게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그래도 회사에서는 나를 나름 나쁘지 않게 봐 주셔서,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셨다).
실습을 마친 바로 다음 주 월요일, 1년간 생활했던 위탁학교에서의 수료식을 마쳤고 곧바로 이틀 뒤 원적교에서의 졸업도 마무리되었다.
공허했다.
분명 한 단계 더 자유로워질 날이었고, 내심 기대했던 순간인데 그리 반갑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불편하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사실 졸업 전후로 집안 사정이 좀 불안정했다.
아빠는 20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꽤나 갑작스러운 퇴사를 선언하셨고(바로 이직하실 회사가 정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일하던 곳의 하도급 계약들이 좋게 풀리지 못 하는 바람에 일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 와중에 살던 집의 건물주가 '12월~2월 중 집을 비워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탓에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나 역시도 사실상 백수인 상태였기에(아마 다음 글에서는 이 얘기를 하지 않을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좀 시끄러운 이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딱히 약속이 있지도 않았고, 일이 있지도 않았고, 갈 곳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무작정 집이 아닌 아무 곳으로 돌아다녔다.
평소에도 그닥 좋지 않은 체력임에도 무리해서 약속을 잡았고, '이 때 아니면 언제 쉬겠어'라는 안일하다면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사갈 집이 정해지고, 남들은 한창 대학 입학과 새 학기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코파운더를 포함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친구들도 대부분 괜찮은 직장을 얻어나가고 있었다.
정시를 준비했거나 예체능 입시에 찌들어 살던 친구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나만 가만히 있는 것 같았다.
항상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는 소리만 듣고 살았고, 또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도 그렇게 이미지 트레이닝이 되어 있었던 것 같지만
거의 처음으로 '내가 남들보다 뒤쳐지고 있구나'라는 것을 정말 크게 느꼈다.
당장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무작정 뭐가 됐든 글이라도 쓰려고 했고, 평소 만들고 싶었던 영상이라도 만드려고 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하지 못했던 자격증 공부들이라도 마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안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내 상태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이사 직전의 일이었다.
이제 벌써 1년 가까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서로를 이끌어 주고 있었던(하지만 항상 내가 더 큰 힘을 받아 온) 팀 래치드의 @이예진 님과의 미팅이 있었던 날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어쩌다였는진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지금 내 상황을 예진님께 있는 그대로 공유했다.
평소 남 힘들단 소리는 들어도 나 힘들단 얘기는 남에게 하는게 익숙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아서 잘 얘기하지는 않는 편인데, 어째서인지 그날만큼은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고 싶었다.
해결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겉으로는 잘 포장된' 나의 '멀쩡하지 않은 속 상태'를 누군가 들어줄 만한 상대가 있었다는 것 자체로 너무 평화로웠다.
다행히 예진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던 것에 대해 나름의 조언을 해 주셨고, 조금이나마 생각을 정리할 힘을 얻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는 힘들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꽤나 많이 받는 듯 하다.
특히나 힘들 때 공감해줄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렇게 매 순간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순간에서 빠져나왔던 것 같다.
그 날쯤부터 조금씩 기운을 차릴 수 있었고 다행히 잡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쁜 순간들이 많아져서인지 무기력에서는 거의 벗어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가 되었다.
(그 사이, 이사 전 날에 독감과 코로나에 동시에 걸린 탓에 몸상태는 어느 때보다 힘들었지만)
차츰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낮아졌고(돌이켜 보니 너무 과분할 정도로 내가 높은 곳에 있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점점 더 가까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취업이 필요하겠단 생각에 나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도 하기 시작했고, 여태 내가 개척해 온 대외 활동 등을 처음으로 정리해보기도 했다.
한동안 '실패한', '빛바랜'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에 사로잡혀 살았지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란 생각에 과거 속에 갇혀서 나를 질책할 시간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꿈'에 대한 정의를 끝마쳤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나의 이상향이 명확하지 않다고 느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여태 내가 너무 무방비 상태였던 것은 분명하다.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했다면 내가 '안정적인 것'에 그토록 불안할 일도 없었을텐데 말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당분간은 지금에 집중해 볼 생각이다.
내 가치를 내가 온전히 쏟아볼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