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빈
Log 7 | 스캐폴딩(scaffolding)이 우리가 찾는 실린더일까?
Rationale
💡 일단 화용론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복병을 폭넓게 탐색해봐요.
💡 계속 “실린더”를 파헤치는 노력을 멈추지 마시길!
💡 이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여러분의 직관을 교정해봐요.
💡 송로버섯을 찾기 위해선 농부의 계산과 돼지의 발견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해요. 이번주엔 기술적인 요소를 꼭 고려해보시길 바랍니다. — <Log 5 | More guides on how to think 중>
저번 로그에서, 전 모두에게 한국어 학습의 복병을 폭넓게 탐색해보길, 동시에 “돼지의 발견”을 위해 기술적 측면도 고려해보길 조언해드렸어요.
그리고 저번 주 금요일, 팀원 모두 이에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각자의 관점에서 복병을 더 탐색하고, 이를 간단하게나마 도울 수 있는 데모를 보여주셨습니다.
당연히 모두의 관점은 조금씩 달랐어요. 하지만 “실린더”를 파헤치는 노력을 멈추면 안돼요. 누군가의 데모가 더 쓸모있으니 이건 가져가고 저건 버리자 — 는 생각을 하기 전에 (물론, 때론 그래야할 때도 있지만), 모든 관점을 아우르는 우아한 진실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말만하면 쓰나요? 이번엔 제가 먼저 실천해보일게요. 아담 그랜트의 <히든 포텐셜>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모두의 관점이 수렴하는 “실린더”를 찾은듯 해요. 바로 스캐폴딩(Scaffolding) 이에요. 모두의 관점을 종합해보면 유연한 입력과 동기 유지가 한국어 학습의 주된 복병으로 지목되는데, 스캐폴딩이 이 둘을 우아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적어도 제 생각은 그래요! 이번 로그에서 스캐폴딩이 우리가 찾는 “실린더”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 방향성을 제안해볼테니, 이에 대해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무엇이 한국어 학습의 복병인가?
우선 금요일에 있었던 데모를 다시 살펴볼게요.
먼저 채은님은 최애 아이돌의 발화로 예를 들어주는 앱을 만들어오셨어요. 가령, BTS를 최애 아이돌로 입력하고 Have you eaten 을 배우고 싶은 문장으로 입력하면, 유튜브에서 “방탄 뷔 형 밥 먹었어?”란 제목의 영상을 찾아주고 설명을 덧붙여주는 앱이에요. 최애 아이돌의 발화라면 “귀를 쫑긋 세우고” 학습할 것이란 기대를 담아 만드셨어요.
이와 비슷하게, 채윤님은 최애 아이돌과 유사한 이름을 지어주는 앱을 선보이셨어요. 정재현을 최애 아이돌로 입력하면 성씨가 아이돌을 따라 정 씨로 정해지고, 학습자의 성격에 따라 나머지 이름을 정해주는 식이에요 (위 선택지의 경우 정채윤이 출력으로 나옵니다!
이유는 채윤님이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성격이 아니라서…라 합니다). 채윤님 또한 채은님처럼 최애 아이돌을 매개로 학습자의 흥미를 돋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담아 만드셨어요.
한편 지민님 은 대화를 하며 눈치껏 학습을 도와주는 앱을 보여주셨어요. AI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I want to learn how to speak ‘I’m a big fan of you’”라 말하면, 적절한 함수를 적재적소에 호출해 도와주는 식이에요. 위 데모의 경우, “저는 당신의 큰 팬이에요”란 번역과 함께 문장 속 단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함수가 호출이 됩니다. 이로부터 지민님은 “생성 AI를 기반으로 유연한 입력을 받고 유연한 출력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하셨어요.
사랑님은 유연한 조사학습에 주안점을 두셨는데요. 어떤 단어든 입력하면 그 단어에 적절한 조사를 찾아주는 앱을 만드셨어요. 위 예시의 경우 적절한 조사가 나오진 않았지만, 이는 프롬프트에 조사에 대한 맥락만 넣어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사랑님의 시도도 핵심은 지민님과 비슷해요 — 사용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에 꼭 맞는 유연한 입력을 제공해주는 것이죠.
자, 이렇게 네 명의 관점을 종합해보면, 총 2개의 복병을 공통적으로 짚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유연한 입력을 찾아주는 것이 복병이다
지민님이 떠올린 대화형 피드백, 사랑님이 떠올린 조사 피드백 모두 학습자의 요구에 맞춰 유연한 입력을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해요. 그도 그럴것이 혼자서 원서를 읽거나, Grammar in Use 연습문제를 풀 때는 이게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단어, 표현, 문법이 있는데 그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는 챕터가 짜잔! 하고 만들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학원을 가거나 구글링을 하는데, 이 경우도 여전히 가려운 곳을 단번에 긁어주지는 않아요. 보통 창피함을 무릅쓰고 선생님에게 집요하게 물어보거나 서너개의 탭을 열어보는 수고를 들여야 답을 얻어낼 수 있죠.
2️⃣ 학습 동기를 유지하는 것이 복병이다
한편 동기를 유지하는 것도 유연한 입력 못지 않게 어려워요. 다이어트도 그렇고, 독서도 그렇고, 어떤 것이든 오래걸리는 일은 동기 유지가 어려워요. 언어학습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채은님과 채윤님이 최애 아이돌로 흥미를 돋구는 시도를 하신거구요.
유연한 입력과 동기 유지 — 모두의 관점을 종합해보면 크게 이 둘을 복병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둘을 해결해보느냐?
유연한 입력 따로, 동기 유지따로 손을 보기보단… 스캐폴딩을 기술적으로 구현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캐폴딩이란?
💡 스캐폴딩은 학습자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일시적인 뒷받침입니다.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지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스캐폴드가 무엇인지, 제가 이해한 선에서 설명해볼게요. 스캐폴딩(scaffolding)은 미국의 교육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가 1976년, 엄마가 아이에게 피카부 (까꿍)를 가르치는 양상을 연구하며 처음 제안한 개념이에요 (Scaffolding Technique, Gonulal & Loewen, 2018).
Playing Peekaboo - How to play Peekaboo with your baby!
위 영상을 보면, 처음엔 엄마가 배개를 들며 영문을 모르는 아이의 주의를 끄는 것으로 놀이를 시작해요. 배개로 얼굴을 가렸다가, “피카부!“하며 얼굴을 보였다가를 반복하며 아이가 피카부의 기본적 문법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립니다.
Playing Peekaboo - How to play Peekaboo with your baby! - YouTube
그러다보면, 종국엔 아이가 스스로 피카부를 할 수 있게 돼요. 스스로 이불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얼굴을 보이며 엄마가 ”피카부!“를 말하기를 기다려요. 엄마의 “스캐폴딩”덕에 난생 처음 피카부의 재미를 자유자재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The Incredible Story of the 8 ‘Kids,’ Harlem Chess Players
“… 킹의 폰은 두 칸 전진하고 뒤이어 나이트가 한 칸 앞으로, 한 칸 대각선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는 규칙을 터득하는게 따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이들이 흥미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6학년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체스 게임을 소개하게 됐을 때 그는 거꾸로 가르쳤다. 체스 말들을 체스판에 놓고 게임 막판부터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상대방을 외통수에 몰아넣는 방법을 다양한 방법을 가르쳤다. 그 구조물이 학생들을 뒷받침한 첫 임시 구조물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길이 보이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꿈을 접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에 불을 지피려면 길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그게 임시구조물(scaffolding)이 하는 역할이다.” — <아담 그랜트, 히든 포텐셜>
아담 그랜트는 그의 신간, <히든 포텐셜>의 도입에서, 2년 만에 할렘가 아이들을 전국 체스 챔피언으로 이끈 애슐리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애슐리가 이들 레이징 룩스 팀의 “히든 포텐셜”을 끌어내는데 썼던 방식이 스캐폴딩이었습니다. 체스의 기본 규칙부터 가르치지 않고, 거꾸로 체스의 결정적인 순간 — 엔드 게임에서 킹을 체크 메이트로 몰아넣는 상황 — 을 먼저 배울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인데요. 킹을 궁지로 몰아넣는 방법이 보이자 승리로 가는 길이 열렸고, 이길 방법이 생기자 학생들의 “결의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합니다. 승부욕에 불타오른 한 학생은 침대에 누워 체스판의 정사각형 64개를 상상하며 머릿속에서 체스를 둘 정도였다네요.
말도 못뗀 아이가 피카부를 스스로 터득할 리 없으며, 체스 초짜라면 엔드게임에 돌입하기도 전 체크메이트를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도움으로, 애슐리의 도움으로, 피카부와 체스의 재미를 우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피카부를 하며 놀고 상상 속에서 체스를 할 수 있게됐죠.
이들이 받은 “도움”은 마치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올라갈 수 있도록 설치했다가 작업이 끝나면 철거하는 임시 구조물 (scaffold)과 비슷합니다.
스캐폴딩이란 그렇게, 학습자 혼자선 발휘하기 어려운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일시적인 뒷받침인 것입니다.
스캐폴딩의 조건?
그럼 학습자를 뒷받침하는 도움이면 모두 스캐폴딩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학습자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선 몇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하며, 그래야만 제대로된 스캐폴딩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적당한 난도 유지 / scaffolding is contingent
<Theoretical Physicist Brian Greene Explains Time in 5 Levels of Difficulty (WIRED, 2023)>
먼저 첫번째 조건입니다. 위 영상에서 언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시간의 개념을 아이에게, 고등학생에게, 대학생에게, 대학원생에게, 그리고 전문가 동료에게 설명해보이는데요. 아이에겐 의자 앞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지만 과거나 미래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며,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어느정도 수학적 기반이 있는 고등학생에겐 운동이 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고등 수학만으로 증명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대학생, 대학원생, 전문가로 갈수록, 대화는 더 깊어지고, 더 어려워지고, 더 철학적으로 변모합니다.
Figure 1: Schematic representation of the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ZPD) — Adapted from: <Scaffolding learning: Principles for effective teaching and the design of classroom resources (Taber, 2018)>
브라이언 그린은 대화 상대의 수준에 맞추어 난도를 세심하게 조절하고 있는 것인데, 그게 바로 스캐폴딩의 첫번째 조건입니다. 스캐폴딩은 적당히 어려운 수준을 유지해야합니다. 학습은 학습자의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쉬우면 (Zone of Actual Development에 있으면) 배울 것이 없어 학습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어려우면 (Zone of Distal Development에 있으면) 뒷받침을 해줘도 소화가 불가능합니다. 학습자의 수준보다 살짝 어려운 수준을 유지하며 뒷받침을 해줘야하며, 그래야만 학습이 이뤄집니다.
2️⃣ 재구성의 물꼬를 터주는 티키타카 / scaffolding is collaborative & interactive
Adapted from — <Scaffolding Instruction for English Language Learners: A Conceptual Framework (Walqui, 2006)>
오른쪽은 스캐폴딩의 모범적 예입니다. 그런데 이를 잘 살펴보면, 적당한 난도 유지 이상의 무언가가 이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지 않습니다. 학생이 자신있게 말하자 무엇을 근거로한 자신감인지 묻고 (I agree with you, but why do you say that with confidence?), 뒷받침이 불완전하자 보충하기를 기다리고 (Because it says that? — 이후 이어진 의도된 침묵), 수정헌법 14조의 핵심을 힌팅하고 (Okay, not any citizen?),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수정헌법 14조에 연결지어보길 조언합니다 (Okay, so is the 14th Amendment helpful to you?).
즉 선생님이 학생이 스스로 이해를 재구성해볼 수 있는 물꼬를 터줍니다.
그냥 인강처럼 가르쳐주면 되지, 왜 굳이 물꼬를 터주는 수고를 하는 걸까요?
가르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스캐폴딩은 학습자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뒷받침입니다. 여기서 “잠재력을 이끌어내는”은 메타포가 아닙니다. 진짜 읽히는 그대로가 목표입니다. 스캐폴딩의 토대가 되는 비코츠키의 사회학습이론은 학습자는 이미 알 준비가 돼 있으며, 그저 그 포텐을 터트려줄 전문가 (More Knowledgeable Other)의 도움이 필요한 것 뿐이라 가정합니다 (물론 첫번째 조건 — 적당한 난도 유지 — 가 성립한다는 조건 하에).
Adapted from — <Scaffolding learning: Principles for effective teaching and the design of classroom resources (Taber, 2018)>
사실 그리 가정하지 않으면 학습의 역설 (The Learning Paradox)을 풀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노예 소년에게 적절한 질문을 이어가는 것만으로 소년 스스로 기하학적 증명을 해낼 수 있음을 보인적이 있습니다 (이를 기록한 플라톤의 <메논>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아예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플라톤은 잊고 있던 전생의 지식을 상기함으로서 학습이 가능하다는 상기설 (Theory of Recollection) 로 그 역설을 풀고자 했습니다. 반면 비코츠키의 사회학습이론은 보다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비코츠키의 관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소년의 ZPD 안에서 기존의 지식을 재구성 해볼 수 있는 물꼬를 터준 것입니다. 즉 소년은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을 재구성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것입니다 (Taber, 2018).
이는 지민님의 직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적당히 어렵든 매우 어렵든 둘다 새로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학습이 가능한 것인가? 란 제 질문에, 지민님은 유저가 느낄 익숙함과 낯섬을 적절히 조정함으로서 가능하다는 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게 소크라테스가 노예 소년에게 준 뒷받침입니다. 그는 익숙함을 재구성해 낯섬을 이해할 수 있는 물꼬를 터준 겁니다.
다시 스캐폴딩 예로 돌아와, 이번엔 학생의 관점에선 봅시다. 학생은 조금이라도 캥기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선생님에게 마음 편히 물어봅니다. 학습자 스스로 수정헌법 14조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며 (It’s like everybody should get the same rights and protection, no matter, like, race and religion) 이어진 선생님의 확인에 불법을 저지른 경우에도 수정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꼬리 질문을 합니다 (No matter if they are a citizen or illegal, they should get the same protection).
즉 학습자는 이해가 될 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티키타카”를 할 수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제대로된 스캐폴딩에선 선생님만 떠들지 않습니다. 학생이 선생님과 “티키타카”하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며 (scaffolding is interactive), 동시에 선생님은 학생이 스스로 깨칠 수 있도록 재구성의 물꼬를 터줍니다 (scaffolding is collaborative).
3️⃣ 서서히 사라짐 / scaffolding fades over time
왼쪽은 언어학습 앱 Babbel에서 불어 레슨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문제입니다. 객관식이지만 선택지가 merci 밖에 없어요. 무조건 맞히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Babbel이 조금씩 멍석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문제에선 선택지가 4개로 늘어납니다.
막판에 가선 최소한의 멍석만 남기고 치워버립니다. 실제 대화와 같은 상황에서 merci가 언제 필요한지 잘 판단해서 답을 해야만 하는데요.
<Scaffolding in Teacher–Student Interaction: A Decade of Research (Pol et. al, 2010)>
이처럼 점진적으로 멍석을 치우는 것이 스캐폴딩의 마지막 조건 — 서서히 사라짐 — 입니다. 교수자의 관점에선, 이미 학습된 것들을 위한 뒷받침은 서서히 치우게 됩니다. 동시에 학습자의 관점에선, 서서히 책임이 커지게 됩니다. 마치 피카부 학습을 마치면 스스로 게임을 통제하는 아이처럼요.
케이스 스터디 - Learning Chess with Dr. Wolf
정리하자면, 스캐폴딩은 적당히 어려워야 하고, 재구성의 물꼬를 터주는 티키타카를 해줄 수 있어야 하고, 서서히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학습자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 오늘의 ZPD가 내일의 ZAD가 되는 - 일시적인 뒷받침이 되어줄 수 있어요.
언어학습 앱을 살펴보면, 진정 스캐폴딩이라 할 수 있는, 위 3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앱은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산타토익은 적당한 난도를 유지하는 알고리즘은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으나, 재구성의 물꼬를 터주는 티키타카를 해주진 않아요. 그저 스파링 상대가 되어줄 뿐인 스픽도 마찬가지고요. 듀오링고는 Explain My Answer기능으로 “티키타카“는 가능하지만, 재구성의 물꼬를 터주기보단 바로 답을 알려주기만 해요.
가장 스캐폴딩에 근접한 앱은 완전히 다른 도메인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Learn Chess With Dr. Wolf 란 체스 코치 앱이에요. 혹시 애슐리가 레이징 룩스팀을 위해 만들어준 스캐폴딩을 구현한 앱은 없을까? 싶어서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앱인데요. 와, 전 이 앱으로 체스를 처음 배웠는데, 쓰는 내내 현존하는 에듀테크 중 가장 스캐폴딩에 근접했다 는 생각을 했어요.
닥터 울프는 체스 게임을 하면서 친절한 훈수를 두는 식으로 “Teach as you go” 해주는데요. 제가 선택한 수준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훈수를 둡니다. 가령, 수준을 beginner로 설정하면 (위) Developing with Tempo와 Making Discovered Attacks 만을 훈수두는 반면, advanced로 설정하면 (아래) 고급 기술인 Taking Open Files와 Trapping Pieces 만을 가르쳐줍니다. 사용자 스스로 수준을 설정한다는 것만 빼면, 적절한 난도를 유지한다는 스캐폴딩의 첫번째 조건을 제한적으로나마 충족합니다.
닥터울프와 체스를 둘 때, 현 상황을 두고 “티키타카“를 할 수는 없지만, 힌트를 요구할 순 있어요. 그런데 힌트를 한번만 누르면, 바로 답을 알려주지 않아요. 왼쪽처럼, ”비숍을 꺼내기 위해선 먼저 길을 터줘야 할거야 (To develop a bishop, you have to clear the way for it first)” 하며, 재구성의 물꼬를 터주는 훈수를 둬줍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힌트를 한번 더 눌러 울프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수를 알 수 있고요. 티키타카가 불가능하다는 것만 빼면, 스캐폴딩의 두번째 조건도 제한적으로 충족합니다.
닥터 울프엔 차근 차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Lessons”도 있는데요. 이 레슨을 시작하면 처음엔 멍석을 깔아주지만 레슨이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치웁니다. 가령, 캐슬링 레슨의 경우, 처음엔 비숍도 나이트도 없는 상황에서 바로 캐슬링을 해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다가도, 레슨의 말미에 가선 나이트를 우선 치워야만 캐슬링이 가능한 상황을 주고 “한번 최대한 빨리 캐슬링 해봐 (Castle as quickly as possible)”라며 도전정신을 자극합니다. 스캐폴딩의 마지막 조건 — 서서히 사라짐 — 을 충족하는 설계라 볼 수 있습니다.
스캐폴딩이 우리가 찾는 실린더일까?
스캐폴딩에 대한 설명을 끝냈으니,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 볼게요.
자, 닥터 울프와 같은 것이 스캐폴딩이라면 말입니다. 스캐폴딩은 우리가 풀고 싶었던 유연한 입력 과 동기 유지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실린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한 난도를 유지 하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학습자의 수준에 맞춘 유연한 입력을 제공하게 됩니다. 브라이언 그린이 아이에게 맞추어 시간을 설명하듯, 닥터 울프가 딱 제 수준에 맞는 훈수를 두듯이요. 동시에 학습자에게 멍석을 깔아주면 알아서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 애슐리가 체스를 거꾸로 가르쳐 할렘가 아이들의 의지를 불태웠듯, 제가 결국엔 체스에 재미가 들려 닥터 울프 연간 구독을 해버렸듯 말예요.
So what? — 특허와 논문의 방향성 제언
그렇다면 앞으로의 방향성을 크게 “Dr. Wolf, but for learning languages”로 잡아볼 수 있습니다.
범위가 중요한 특허의 경우, 닥터 울프를 외국어 학습 용도로 재해석한 스캐폴딩 기술 (a properly scaffold-ed version of Dr. Wolf, but for learning second languages)을 목표로,
깊이가 중요한 논문의 경우, 한국어 학습 시 자주 범하는 사회적 결례 교정에 초점을 맞춘 스캐폴딩 기술 (a properly scaffold-ed version of Dr. Wolf, but for avoiding Faux Pas in the Korean language)을 목표로,
잡아볼 수 있습니다.
Discussions
하여, 제가 여러분과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다음 셋입니다.
1️⃣ 질문 1 — 스캐폴딩이 우리가 찾던 실린더인 것 같나요? 위화감이 든다면 무엇인가요?
2️⃣ 질문 2 — “닥터 울프를 외국어 학습 용도로 재해석한 스캐폴딩 기술”이란 특허의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 질문 3 — “한국어 학습 시 범하게 되는 사회적 결례 교정에 초점을 맞춘 스캐폴딩 기술”이란 논문의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생각해보고, 그간 흐릿했던 우리 퍼플 프로젝트의 해상도를 한번 힘껏 올려봅시다 :)
<이전로그>
Log 1 | 작금의 기술로 한국어 화용론 학습을 혁신하자
Log 2-1 | [UPDATE#1] 작금의 기술로 한국어 화용론 학습을 혁신하자 by 지민님
Log 2-2 | [UPDATE#1] 작금의 기술로 한국어 화용론 학습을 혁신하자 by 채은님
Log 3 | 실린더 로고의 탄생
Log 4 | 리더는 먼저 공언하고 먼저 믿어야 한다
Log 5 | more guides on how to think
Log 6 | 논문보다 특허가 먼저다
Codename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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