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상담 챗봇 개발기 (2) - 나홀로소송 서비스로 피봇
TL;DR
원래는 법률 상담 챗봇을 만들고 있었는데 나홀로소송 서비스로 피봇하였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던 중 PMF를 찾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고 새로운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10배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만이 PMF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외에도 몇 가지 방법이 더 있었습니다.
0. 들어가며
저는 작년 이맘때쯤 법률 상담 챗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쉽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아직은 의미 있는 수준의 챗봇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고나자 그럼 지금은 뭘 만들어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실험을 계속 해야 될지가 고민되었습니다.
고민의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저는 PMF(Product Market Fit)를 찾을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계속 탐색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PMF의 정의나 PMF를 찾는 제품이 가져야 할 조건에 대해서는 저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저는 그 바탕 위에서 고민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PMF를 찾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법률 상담 챗봇이 아니라 나홀로 소송하는 분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이전에 PMF를 어떻게 이해했었는데 그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고 그 결과 왜 나홀로소송 서비스로 피봇하게 되었는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어서 그럼 앞으로는 정확히 무엇을 만들 것인지, 그리고 그 제품을 어떻게 팔 것인지, 마지막으로 그런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PMF를 찾아 헤맨 지난 시간들
먼저 제가 생각하는 PMF의 정의는 명확합니다.
제품의 핵심 가치를 경험한 사용자(즉, activate된 사용자)가 x주 후에도 이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비율 y%.
이 정의에서 x와 y의 값은 제품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예컨대 B2C 제품의 경우 최소 8주 후에도 30% 이상은 제품을 다시 사용해야 PMF를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시장별/산업별 목표 재사용률 레퍼런스에 대해서는 이 레니의 뉴스레터 글이 참고할만합니다). 그리고 제품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서 출시해본 사람은 30%의 재사용률이 얼마나 높은 숫자인지,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지 잘 아실 겁니다. 저 역시도 지금까지 몇 개의 제품을 출시해 보았지만 항상 처참한 수준의 재사용률 성적표를 받았고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건지 머리를 싸매고 씨름해야 했습니다. ‘재사용률 30% 이상을 달성하려면 기존보다 10배 더 좋은 경험을 줘야 되는데 논리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기존 회사에 비해 자본도 기술도 부족한 내가 만든 제품이 어떻게 기존 제품보다 10배 더 좋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스타트업 분야의 오랜 격언인 “빠르게 출시하라(we ship it to customers way before it’s ready)”라는 린 스타트업 방법론과 합쳐져 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빠르게 출시하면서 동시에 10배 더 좋은 제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제품을 개발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10배까지는 몰라도 기존 제품보다는 꽤 좋은 제품은 만들 수 있긴 하겠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 위험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제품을 빠르게 만들어서 출시하는 것 자체는 올바른 방향인 것 같은데 그러면서 동시에 10배 더 좋은 경험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마치 전 세계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나 기술을 나만 갖고 있어서 그 비밀로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가능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논리적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이치에 맞지 않는 명제 같았습니다. 저는 제 머리로 온전히 이해가 되야만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이 수수께끼 같은 난제를 계속 파고들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스타트업들의 초기 모습을 하나씩 뜯어 보면서 이 회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어려운 일을 해내었는지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빠르게 출시하면서도 10배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을 찾아냈습니다.
2. 빠르게 출시하면서도 10배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방법 - 서비스 운영에서 반드시 손해를 보면서 수동으로 운영하기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스타트업인 토스와 배달의 민족 사례를 케이스 스터디 해보겠습니다.
먼저 토스는 개인적으로 “위대한 팀이 엄청난 시장을 만났을 때 특별한 일이 생긴(When a great team meets a great market, something special happens)”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토스 팀이 만약 미국에서 사업을 했다면 지금보다 기업 가치가 100배는 더 커져서 수백조 짜리 회사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님은 한 강연에서 토스의 초기 모습을 공유해주셨는데 서비스 운영 초기 8주차 재사용율이 약 34% 정도되었고 월간 기준으로는 재사용률이 무려 70%에 육박했습니다. 그런데 토스는 아이디어를 불과 하루 만에 검증했고 제품도 매우 빠르게 출시하였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혹시 토스의 초기 운영 방식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토스는 처음에 간편송금 서비스로 시작했습니다. 송금인이 토스 서비스에 접속해서 돈 받을 사람의 계좌번호나 전화번호를 남기면 이승건 대표가 8시간마다 수동으로 자기 돈에서 먼저 계좌이체를 해서 돈을 보냈습니다. 계좌번호를 남긴 경우에는 바로 이체할 수 있었지만 수취인의 전화번호만 있는 경우에는 수취인에게 문자로 링크를 보내 송금 받을 계좌정보를 입력하게 한 다음 돈을 보냈습니다. 그럼 토스는 자기 돈으로 먼저 보낸 돈을 송금인한테 어떻게 돌려 받았을까요? 토스 팀은 CMS를 이용했습니다. CMS는 시민 단체에 정기 후원을 하거나 신문/우유 대금 등을 정기적으로 납부할 때 주로 사용되는 이체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는 송금을 처리할 때마다 청구할 수는 없어서 토스 팀은 매주 1번씩 그때까지 송금된 금액을 계산하여 청구액을 바꿔가며 송금인에게 이미 이체된 금액을 청구하는 방법으로 돈을 돌려 받았습니다.
먼저 여기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제품을 빠르게 출시하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고 그냥 서비스의 껍데기만 만든 다음 사용자에게 서비스 요청을 받는 대로 수동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아주 빠르게 출시할 수 있습니다. 만약 토스 팀이 송금인의 송금 요청을 받았을 때 시스템적으로 자동으로 송금이 처리되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다면(그 당시 제도나 규제 등으로 그런 서비스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 같지만) 서비스를 개발하고 출시하는데 족히 1년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수동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빠르게 제품을 출시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랜딩 페이지 같은건 몇 시간 안에도 뚝딱 만들 수 있고 랜딩 페이지 조차 필요 없이 서비스를 출시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수동으로 작업을 처리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많아질 경우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작업을 처리할 사람을 더 고용해야 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비용도 비례해서 늘어납니다. 또 여러 사람을 고용해서 인간의 노동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합리적인 가정과 실행 계획으로 그런 수동 운영을 자동화할 수 있는 계획만 세울 수 있다면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초기에는 수동으로 운영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은 토스에서 돈을 보내면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처리됩니다.
그럼 10배 더 좋은 경험은 어떻게 해야 줄 수 있는 걸까요? 제가 찾은 해답은 고객 1명당, 서비스 제공 한 건당 반드시 손해를 보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서 다른 회사들은 이익을 남기면서 물건을 파는데 우리는 손해를 보면서 물건을 팔면 10배 더 좋은 경험을 줄 수 있습니다. 다시 토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초기 토스의 송금 수수료는 무료였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토스의 성공 원인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것 같은데 저는 이 수수료 무료 정책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토스의 초기 사용자층은 주로 20대였는데 20대에게는 이체당 몇 백원씩 하는 송금 수수료가 너무 아까웠을 겁니다. 저 역시도 출금 수수료 몇 백원을 아끼기 위해 가까운 다른 은행 ATM을 놔두고 몇 백미터 떨어진 자기 은행 ATM을 찾아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수료 무료 혜택이 아니라면 토스를 써야 되는 이유가 사실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이승건 대표님은 은행 앱을 쓰면 인증을 6번 거쳐야 되는데 토스를 쓰면 3번이면 된다고 강조하셨지만, 그것만으로는 토스의 단점을 상쇄하기는 너무나도 부족해 보입니다. 송금을 신청하면 최대 8시간은 지나야 이체가 되었고 또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피싱 같아 보이는 문자를 클릭하고 들어가서 자기 계좌 정보를 입력해야 됐습니다. 다른걸 다 떠나서 돈을 보낼 때는 기본적으로 이 돈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상대방한테 들어간다는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들어보지도 못한, 심지어 랜딩 페이지도 허접하기 짝이 없는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해서 돈을 보낼 이유는 도대체가 없었습니다. 저는 토스가 크게 성공한 뒤에도 이렇게 으스스한 서비스가 성공한 것이 그저 신기했습니다. 그만큼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수수료 무료 정책이 매우 큰 가치(10배 더 좋은 경험)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몇 백원이 어른들의 눈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직장을 갖고 주거래 통장을 만들면 보통 이체 수수료를 무료로 해주는 혜택을 받기 때문에 직장인 중에는 이체 수수료라는게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또 20대 중에도 집이 부자인 친구에게는 몇 백원 수수료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가장 위대한 혁신은 종종 가장 푸대접받고 있는(underserved) 그룹의 문제를 해결해주는데서 시작하는데 제 생각에는 토스의 경우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배달의 민족 사례는 간단히만 다루겠습니다. 초기에 배달의 민족은 잘 알려졌다시피 앱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사람이 일일이 해당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서 주문을 대신 넣었습니다. 이런 운영 방식은 마켓플레이스 서비스의 콜드 스타트 문제를 해결하는 영리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동 주문 처리 시스템 같은 것을 만들지 않고도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제품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배달의 민족 운영 초기에는 서비스를 한 건 처리할 때마다 회사에 손해가 되는 구조였습니다. 처음에는 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전혀 없었을 것이고 시간이 좀 지나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전화로 주문을 하는데 드는 인건비만큼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배달의 민족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 만큼 정확히 그만큼 사용자에게 가치가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드시 손해를 보면서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면 8주 재사용률 30%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너무도 쉽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명품 브랜드 제품을 어느 제품, 어느 가격이든 무조건 정가보다 20%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사용자는 혹시 구매하는 제품이 가품일지 모른다고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서비스는 온라인으로는 구매가 불가능하고 구매자가 반드시 백화점에 방문해서 우리 직원이랑 같이 명품관 앞에서 정가의 20% 할인된 금액을 결제하고, 명품관에 같이 입장해서 원하는 제품을 본인이 직접 고르고 구매 즉시 상품을 인도 받는 구조라고 해봅시다. 이런 구조의 서비스라면 영업 이익률이 마이너스 30% 정도 될텐데 괜찮습니다. 요즘 스타트업에서 영업 이익률 -30% 정도는 매우 흔하고 때로는 오히려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서비스라면 제품을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웹사이트가 아무리 개떡같아도 사용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비스를 신청할 것입니다. 웹사이트 조차 필요 없습니다. 그냥 카톡 계정 하나를 만들어서 신청을 받아도 됩니다. 주간 성장률이 50%는 족히 넘을 겁니다. PMF를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이런 비즈니스는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운영을 하면서 손해를 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확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합리적인 가정과 훌륭한 계획으로 실행을 해도 고객에게 동일한 가치를 주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줄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즈니스를 통해 천만원짜리 샤넬 백을 800만원에 살 수 있으면 고객은 200만원 어치 가치를 얻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떤 계획으로 실행을 해도 이 200만원 어치의 가치를 더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할인율을 낮추면, 그래서 천만원짜리 백을 900만원에 살 수 있게 되면,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가치도 정확히 그만큼 줄어듭니다. 반면 토스나 배달의 민족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토스의 송금 서비스가 주는 가치는(내가 지정한 계좌로 원하는 만큼 돈을 보낸다) 초기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제공됩니다. 하지만 토스가 부담해야 되는 비용(송금 수수료)은 토스가 더 많은 송금을 처리할수록 낮아집니다. 물론 이 비용 감소폭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고 시간도 아주 오래 걸렸을 겁니다. 진짜 진짜 진짜 송금을 많이 처리하게 돼서야 아주 조금 비용이 줄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줄기는 줄었을 겁니다. 거기에 조금 낙관적인 가정들을 더하면 토스의 무료 송금 서비스는 여전히 미친 생각이긴 해도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아이디어는 아니게 됩니다. 배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민이 처리하는 주문 건수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자동 주문 처리 시스템을 만들어서 업체들이 사용하게 만들 수 있고 또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수수료를 높여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글이 길어서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