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 한해 창업사기극을 벌인 이유
일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여름.
그 당시 난 모든 게 잘 풀리리라 생각했다. 사람은 한번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나면 정반대의 성향을 갖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된 여름이었다. 마음속 온정을 더 중요시하게 된 나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상태가 편안했다. 도전 없는 삶속에서는 평온이 있었다. 무너질 일도 없었고 실망도 없었다.
사실 시간도 괜찮게 보내고 있었다. 평일이면 도산대로부터 성동구, 중구, 남양주 곳곳을 다녔다. 나가서 오는 길에 맛있는 걸 사먹고 다니면 기분이 풀렸다. 아마 돈만 계속 있다면 이런 삶은 정말 최고가 아닐까? 생각이 들정도로 소비는 괜찮은 해결책이었다. 내 안에 있는 욕구를 푸는 데에 이 방법이 꽤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이런 저런 내 잔고 속의 돈은 언제까지나 허용해 줄리 없다는 태도 아닌 각오를 내보였고, 난 어쩔수 없이 생산성, 돈을 위한 생산성을 고민해야 했다. 내 적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데 왜 난 테헤란로 건물주가 아닐까.
노력해서 돈을 번다는 건 달콤하게 들리지 않았다. 한참 비트코인 성공사례가 주변에서 들려올 때즈음, 한발 늦게 탑승한 내가 생각해낸 건 주식이었다. 테마별로 객장 중에 가장 토론이 열띤 종목을 하나씩 잡았다. 통곡의 소리와 비아냥의 소리가 오가는 곳에서 긴급정보라며 번호를 남기라는 글들이 있었고, 고수들의 주식방, vip 주식방, 소식이 오는 대로 들어갔다. 과연 낫놓고 기역자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개중에는 본인들이 만들어놓은 거래소에 돈을 넣으라는 곳도 있었다. 어쨌든 이 사짜판에서 나는 사짜 킬러가 되어야지, 처음에 가상 모의투자로 이천만원넣고 해보다가 한달 수익률이 17%가 찍힌날, 나는 실제 돈을 똑같이 집어넣는다.
그런데 시작한 종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하면 핑계일까. 하루만에 -15%를 찍고 원금의 세배를 집어넣었던 바닥인 줄 알았던 곳에 지하실이 열리는 걸 봤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8시 반부터 미리 선주문을 확인하고, 9시면 제자리에서 빨간 파란 기둥이 롤러코스터를 탈때면, 내 피도 솟구쳐 올랐다. 실패의 기록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 종목 기준으로 +500%를 찍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제때 환수하지 않은 주식은 거래중지를 먹었고, 본의아니게 나는 즐기고 나올 줄 알았던 놀이공원에서 인생레슨만 챙겨 나온다. 풀업그레이드 16인치 맥북 프로 몇 대를 날린 것으로 내 교훈은 마무리 되었다.
그때 나는 정말 내가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학부에서 배운 걸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15학점이 아닌 21학점씩 꽉꽉 채워 들었다는 걸 듣고 '성실하게 살았네.' 하면 나는 항변하는 말이 새어나갈까 내 입술을 먼저 깨문다. 칭찬으로 넘기기 좋은 말에 구태어 항의할 필요 없지만, 나는 자퇴를 목표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왕 그만둘거 다 등록금은 뽑아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인문부터 자연계열, 이공학, 상경계열. 많은 학부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나는 만능 고물상이었다. 모든걸 나불거리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없었다. 게임프로그래밍 관련 수업까지 듣고 났던 그 해에는 정말 자퇴를 해야지 다짐을 하고 있었다. 컴공 교수님들은 그런 아이의 눈빛을 알아보는 빅데이터가 있었는지 종강을 하고 나서, 교수님이 따로 불러 말씀을 하셨다. 넌 처음에 잘하던 애가 왜 나중가서 안하냐고. 내 옆자리와 옆옆자리 아이가 중도 휴학을 했으니 비단 내 성적만 놓고 말한 게 아니었다. 그건 태도였다. 그때 알았다. 중요한건 어디로 꺾어야 하나가 아닌,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 길로 (자퇴대신) 휴학을 때리고 서울산업진흥원의 SeSAC 900시간 개발자 과정에 합류한다. 다만, 내가 한 일은 깃헙에서 매일 새로운 코드 베끼기였다.
그러나 그걸로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깨달을 때즈음 나는 취창업 멘토링 중 하나를 받아야 했다. 취업멘토링은 생각보다 지리했던 이유로, 또 이대로는 이력서에 써내릴 게 없다는 이유로, 두번째 멘토링은 창업으로 바꿨다.
두번째 만난 멘토에 개발 봐주실 수 있는지 묻자 본인은 그 대신 예창패 서류를 준비해줄 수 있다고 했다. 멘토가 말했다.
'이거 저랑 같이 하면, 이거 지원사업은 그냥 따요.'
그때 예비창업패키지가 뭔지, 하면 정부에서 최소 3-4천의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걸 알게 됐다.
‘ 아 그런가. 저 사실 취업 듣기 싫어서 왔어요. 그거 괜찮네요. 돈은 어떻게 쓸 수 있죠? ‘ 그것도 모르는 친구가 창업멘토링을 들었나 싶었는지 이해가 쉽게 설명해줬다. 정부지원금으로 노트북 몇개는 얻을 수 있어요. 그때 들린 기회는 내가 주식으로 말아먹은 금액에 대한 만회의 기회였다. 그래 그럼.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때부터 나의 사기극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가짜 창업 준비는 시작됐다.
그런데 할수록 창업이란 건… 진심이 되게 만들었고, 결국 난 사업계획서를 쓰다 말고 진짜 사업을 하고 싶어 하게 된다. 4번의 mvp 테스트, 그리고 천만원의 매출. BM이라는 단어, 린스타트업의 개념도 모르던 내가 그때 지킨 룰 하나만은 칭찬해주고 싶다. 그때 사업은 오로지 실행, 실행, 실행, 이었다.
다음부턴 나의 창업 사기록에서 검증하면서 배운 내용을 적어보려고 한다
